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아멘'은 어디서 왔을까?
'아멘'은 이집트 아멘호테프 4세에서 기원한다.
아멘호테프 4세는 역사상으로 확인 가능한 일신교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그는 그동안 믿어 왔던 아멘신을 거부하고, 이름도 아케나톤으로 개명하며, '아톤신'(태양신)을 믿는다.
이렇듯 기독교 성경은 수메르문명의 점토판 기록, 조로아스터교, 이집트의 여러 왕조 등을 참조해 짜집기해서 만든 것이다.
아멘호테프 4세
이집트 신왕국 18왕조의 10대 왕(B.C. 1379~1362). 아멘(Amen) 신을 받드는 신앙이 번창함에 따라 사제관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그는 아멘신을 미워하고 그 세력을 누르기 위하여 태양신 아톤(Aton)을 받들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이크나톤이라고 바꾸고 수도를 아마브나(El-Amavna)로 옮겼다. 그리하여 그의 다스림을 "아마브나 시대"라 일컫게 되었으며 사실적이며 특이한 아라미나 예술을 일으켰다.
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
아케나톤(Akhenaton), 또는 아크나텐(Akhnaten)이나 아케나텐(Akhenaten), 아케나톤(Ikhnaton)이라고도 한다. 아케나톤이 살던 시대에 사용된 후기 이집트어로는 ˈʔiːχ ne ˈjoːtə 라고 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를 계승했으며 재위기간은 기원전 1353년에서 1336년으로 추정된다. 아케나톤은 즉위하자마자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이집트에 대격변을 일으켰다. 이전의 아문 중심의 다신교 신앙을 무너뜨리고 태양신 아톤을 숭배하는 유일신 사상을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자신의 이름도 '아톤에게 이로운 자'를 뜻하는 아케나톤으로 개명했다. 또한 아마르나 지방에 신도시 '아케타톤'을 건설해 궁전을 짓고 수도로 삼아 천도했으며, 기존의 신관층들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당연히 신관과 기존의 기득권층들은 극렬히 반발했다. 결국 아케나톤이 죽자 아톤 신앙은 빠르게 소멸했고, 아케나톤은 기록말살형에 처해지면서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파라오 취급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아케나톤 이후의 파라오들은 정말 아케나톤을 혐오했다. 제18왕조를 이어 들어선 제19왕조의 파라오들은 아케나톤과 그의 유일신 사상을 죄악시하면서 거의 그를 악마화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가 지었던 건물들 대부분은 무너지거나 다른 건물들에 쓰기 위해 헐려나갔고, 아케나톤의 이름이 새겨진 석상이나 벽화들은 모조리 사포로 지워내 버렸다. 역대 파라오들은 아케나톤을 포함해 그 후계자들인 투탕카멘, 아이 등을 '그 악마', '악귀' 등으로 칭하며 아예 파라오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케나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까지 갔었기에 19세기까지 아케나톤에 대해서는 고고학계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나 19세기 후반에 아마르나 유적이 발굴되고, 아케나톤의 미라가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후 '최초의 유일신 신앙'을 도입하고 사회 개혁을 이끈 계몽군주로서 재조명되었지만, 실상은 권위만 드높이려 했지 이렇다 할 민생 개혁을 주도하지는 않았던 파라오였다.
2. 생애
아케나톤은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라면 그 위에 '투트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형이 있었기에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겠지만 투트모세가 일찍 죽으면서 아케나톤이 그대로 왕위를 승계하게 된다. 아케나톤은 기원전 1353년 경[8] 테베에서 '아멘호테프 4세'라는 이름으로[9] 파라오에 즉위했다. 그가 처음부터 아톤 신앙을 신봉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재위 초기 아케나톤은 아멘호테프 4세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아툼, 오시리스, 아누비스 등의 기존 신들에 대한 전통적인 의식을 그대로 진행했다. 아버지가 시작했던 카르나크 대신전의 아문 사원 공사를 계속했고, 아문 대사제 직함을 유지하면서 기존 신앙을 어느 정도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아케나톤의 행보는 기존 신앙을 부정하고 아톤 신앙쪽으로 기우는 듯한 모습을 서서히 보이게 된다.
3. 종교개혁
아멘호테프 4세, 즉 아케나톤은 슬슬 아톤을 위한 태양신전들을 축조하려고 들었다. 재위한 지 4년 차쯤 되자 그는 자신의 신앙이 태양신 아톤 종교임을 부정하지 않았고,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선포하며 기존 신관층들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부바스티스, 헬리오폴리스, 멤피스, 케르마, 네켄 등의 대도시들에 속속이 파라오 주도하의 아톤 신전들이 들어섰고, 심지어 기존 신앙의 중심지인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에도 아톤에 바치는 사원을 집어넣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자신이 더이상 아멘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퍼포먼스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아톤에게 이로운 자'라는 뜻의 '아케나톤'으로 개명했다. 즉위 초에 아톤이라는 새로운 신앙을 선포했을 때만 해도 아톤은 라의 다른 모습이라고 선언되었지만, 재위 9년에 드디어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부인하고, 아톤을 유일신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아톤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에서 인격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오로지 둥근 태양에서 끝에 손이 달린 빛살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으로만 묘사하게 했다. 이는 역사상으로 확인 가능한 세계 첫 번째 일신교이다.
사실 "하나"와 "여럿"을 대조하는 형태의 이원론은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신앙에서 이러한 이원론이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 비해 아케나톤의 경우에는 이를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오직 "하나"만을 선한 개념으로 규정했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여럿"이라는 개념은 신학적으로 신성(神性)의 물리적인 현현과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아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케나톤은 이름을 개명함과 거의 동시에 새로운 수도를 지어 천도하기로 결심했다. 새 수도는 현재 아마르나 지방의 한 분지에 지어졌다. 테베와 멤피스 사이에 위치한 이 분지의 지형은 중간이 깊숙히 파여있고 그 주위를 높은 절벽들이 둘러치고 있어 히에로글리프로 '수평선'을 의미하는 글자와 형상이 유사했다고 전해진다. 아케나톤은 이 신도시에 '아톤의 지평선'이라는 뜻의 '아케타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진흙 벽돌을 사용한 신공법으로 궁전, 신전, 귀족들의 저택 등이 속속이 들어섰고, 신공법을 사용한 덕택에 몇 년도 되지 않아 거대한 도시가 완성되었다. 아케나톤은 정말 이 도시를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덕분에 아케타텐은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아케나톤이 왜 굳이 멀쩡한 테베나 멤피스 등을 두고 신도시를 세웠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고학자들은 기존의 대도시들에는 전통 신앙을 신봉하는 사제층이 너무 깊숙이 깔려 있었고, 이에 환멸을 느낀 아케나톤이 신관들과 마주치기 싫어 아예 새 도시를 지어 그 곳으로 옮겨가버린 것이 가장 타당한 이유라고 본다. 이 아케타텐이 현재의 아마르나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흔히 아마르나 시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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