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체코의 출판인이자 퍼블리시스트, 블로거인 루카스 로탄(Lukáš Lhoťan) 그는 과거 체코-무슬림 기관(Česko-muslimský institut)을 설립했던 인물이자 전직 무슬림이었으나, 이후 이슬람을 이탈하여 기독교로 개종한 뒤, 주로 이슬람교와 관련된 사회적·정치적 이슈, 발칸 반도 분쟁 등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비평하는 활동함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무슬림들은 세르비아 마을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며, 그곳에서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것이 전체 스레브레니차 비극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공식 미디어 선전에 맞지 않는데, 그 선전은 이유 없이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스레브레니차에서 처형하러 간 악한 믈라디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이유 없는 것이 아니었고, 동기가 있었으며, 그 동기는 스레브레니차가 NATO의 보호 아래 기반지였고, 그곳에서 무슬림들이 세르비아 여성, 아이들, 노인들을 죽이기 위해 출격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행동들은 전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오리치 재판 자료에서도 문서화되어 있다. 공격은 그 외에 그니오나, 라트코비치, 예제스티차, 파코비치, 비옐로바츠, 크라비차(1993년 1월 7일, 정교회 크리스마스) 또는 스켈라니 같은 마을들을 겨냥했다. 마을들은 불태워지고 약탈되었으며, 세르비아 민간인들이 살해되었다. ICTY는 수십 개의 세르비아 마을과 농장들이 파괴되었고, 일부 작전에서 오리치의 부대가 민간인들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 그들이 공격에 참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스레브레니차의 무슬림 민간인들이 세르비아 영토로 나가 살해하고 약탈하러 갔다. 게다가 무슬림들은 세르비아 포로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세르비아인들 사이에 복수심과 위험한 무슬림 침략자들의 기반지 해결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단지 POLICIR ČR의 세심한 게슈타포나 StB 요원, 또는 EU나 소로스 자금 지원 비영리 단체의 누군가, 그들이 토론과 소셜 프로필을 모니터링해 불편한 정보와 의견 게시로 사람들을 감옥에 넣으려 시도하는 자에게만 해당되겠지만, 내가 여기서 묘사하는 것은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이전에 일어난 모든 것의 묘사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대학살을 승인하지 않으며, 제 생각에 모든 것이 다르게 해결될 수 있었지만, 독일과 유고슬라비아 분열 및 발칸 반도에 무슬림 국가 창설에 관심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이 그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됐다. 추가로, 믈라디치 장군은 포로된 적들의 처분을 결정할 때 그들이 위협이 되거나 그들의 범죄에 대한 집단적 복수인 경우에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경우에는 포로들을 살려두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라브닉 지역에서 UN 부대가 살인하는 무슬림들에게 크로아트인들을 내주는 것을 원했지만, 믈라디치가 그들을 구했다. 1993년 여름, 중앙 보스니아(트라브닉 지역)의 크로아트-보스니아 전쟁 중, 세르비아 공화국 군대가 라트코 믈라디치의 지휘 아래 수천 명의 크로아트 민간인과 HVO 전사들의 대피를 허용했다. 그것은 세르비아 통제 지역, 구체적으로 블라시치 산을 통한 것이었다. UNPROFOR는 이전에 대피를 거부했다. 이 사실은 믈라디치 재판에서 ICTY 앞에서 트라브닉의 당시 HVO 간부인 다보르 콜렌다가 확인했다. 그는 대피에 직접 참여했다. |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서구와 나토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세르비아를 악마화하고 발칸 반도 내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만든 조작극이다.
1. 학살 규모와 사망자에 대한 주장
제작자는 8,300명 학살설이 날조되었다.
○ 전투 요원의 희생
당시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 아닌 전투 요원들이었으며, 교전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들을 학살로 포장했다.
○ 숫자 부풀리기
초기에 발견된 시신은 수백 구에 불과했으나, 나토와 서구가 곳곳의 공동묘지에서 시신을 모아 마치 대량 학살이 있었던 것처럼 꾸며냈다.
○ DNA 분석의 의구심
시신을 모아 DNA 분석을 했다는 주장 역시, 해당 지역에서 자연사했거나 다른 이유로 사망한 사람들을 학살 피해자로 둔갑시키기 위한 '수작'이다.
2. 나토와 서구의 전략적 개입
서구가 의도적으로 갈등을 유발했다.
○ 공작 활동
세르비아군이 학살을 저지르도록 유도하여 나토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하키아 메지치'의 증언 인용함.
○ 외부 용병 투입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에서 유입된 지하디스트 용병들이 세르비아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했음에도, 서구 언론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세르비아계의 만행으로만 보도했다.
3. 크라이나 인종 청소와의 연관성
스레브레니차 사건은 크로아티아 내 '크라이나' 지역에서 벌어진 세르비아계 축출 작전의 전략적 연막이었다.
○ 영토 회복 야욕
크로아티아와 독일 등 서구 세력이 크라이나 지역의 세르비아인을 인종 청소하기 위해, 스레브레니차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복의 명분으로 활용했다.
4. 서구의 반세르비아 정교 아젠다
이 모든 왜곡이 단순한 정치적 계산을 넘어, 정교(Orthodox) 세력을 말살하려는 서구 기독교(가톨릭 중심)의 근원적인 적개심에서 비롯되었다.

|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와 비극적 분열을 이끈 핵심 원인은 다음과 같다. ○ 티토의 사망과 강력한 구심점의 상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로 다른 민족·종교적 배경을 가진 6개 공화국(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ナ,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과 2개의 자치주를 하나의 연방으로 묶어낸 것은 티토의 카리스마와 공산당의 철통같은 통제력이었다. 1980년 그가 사망한 뒤 연방을 하나로 지탱할 정치적 접착제가 사라졌다. ○ 만성적인 경제 위기와 지역 간 격차 심화 1980년대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막대한 대외 부채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북쪽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자신들이 벌어들인 돈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남쪽 지역(세르비아 및 코소보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반면, 연방의 중심이었던 세르비아는 연방 제도가 자국민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 민족주의의 부활과 정치적 선동 냉전 종식과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는 유고슬라비아 내에 민족주의의 불을 지폈다. 특히 세르비아의 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는 '대세르비아주의'를 내세우며 세르비아인의 정치적 우위와 연방 내 권력 집중을 도모했다. 이에 반발하여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등 다른 공화국들도 민족주의적 지도부를 선출하며 연방 탈퇴를 준비했다. ○ 헌법적 구조의 모순 1974년 개정된 헌법은 각 공화국과 자치주에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했으며, 연방 대통령직을 순환제로 운영하게 했다. 이는 각 지역의 독립성을 키워주었지만, 동시에 연방 정부의 통제력을 무력화했고, 위기 상황에서 중앙 차원의 신속한 조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점이 되었다. ○ 외부 세력의 개입과 불신 증폭 냉전 종식 후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조기에 승인하면서 연방의 해체는 돌이킬 수 없는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각 민족 집단 간 역사적 상처와 학살의 기억(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갈등)이 소환되었고, 이는 상호 간의 극단적인 불신과 공포를 낳아 결국 끔찍한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인종 청소로 이어졌다. |
< 존 쉰들러의 책 언홀리 테러 - 보스니아 내전의 진실 요약 >

□ 서론 (잊혀진 전선과 글로벌 지하드의 탄생)
존 쉰들러(John R. Schindler)의 저서 《언홀리 테러: 보스니아, 알카에다, 그리고 글로벌 지하드의 부상(Unholy Terror: Bosnia, Al-Qa'ida, and the Rise of Global Jihad)》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의 이면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저자인 존 쉰들러는 미국 해군정보국(ONI)의 방첩 요원 및 전직 발칸 반도 담당 정보 분석관이자 역사학자로, 학계와 정보당국에서 체득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냉전 종식 직후 국제 정세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파헤친다.
일반적으로 보스니아 전쟁은 세르비아계의 민족 청소와 이에 맞선 보스니아 무슬림(보슈냐크인) 및 크로아티아계의 방어전, 그리고 나토(NATO)의 개입으로 평화를 찾은 인도주의적 개입의 성공 사례로 기억된다.
그러나 쉰들러는 이 프레임이 서구 중심의 정형화된 서사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가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핵심 진실은,
보스니아 전쟁이 단순한 민족·종교 간의 국지적 분쟁을 넘어 오늘날 전 세계를 위협하는 글로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네트워크, 즉 알카에다(Al-Qaeda)가 국제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도약하고 제도화된 결정적 요람이었다는 점이다.
□ 본론
1. 보스니아 내전의 실상 (민족적 비극과 이슬람 전사들의 유입)
소련의 해체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붕괴는 발칸 반도에 거대한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
1992년 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계 세력은 이에 반발하며 무력 충돌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슬림 민간인이 학살과 강간 등의 전쟁범죄에 노출되었다.
서방 세계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지연되는 동안, 사라예보를 비롯한 보스니아의 이슬람 지도부는 생존을 위해 전 세계 무슬림 형제단과 아랍 국가들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러한 호소에 응답한 것은 단순히 자선가들이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소련 전쟁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갈 곳을 잃었거나 새로운 지하드의 전선을 찾던 아랍 무자헤딘(Arab Mujahideen)과 국제 테러 조직의 잔당들이 보스니아로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쉰들러는 이들이 단순한 의용군이나 구호 요원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걸프만 연안 국가, 그리고 수많은 이슬람 자선 단체(NGO)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업고 들어온 이들은 보스니아 영토 내에 이슬람 근본주의의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들은 현지 보스니아인들의 세속적이고 온건한 이슬람 전통을 멸시하며, 사우디아라비아식 와하비즘(Wahhabism)과 살라피즘(Salafism)을 이식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생존이 급급했던 보스니아 지도부는 무기를 제공하고 실전에 능숙한 이슬람 전사들의 존재를 마지못해 환영했으나, 이는 결국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것과 다름없는 선택이었다.
2. 서방 정보기관의 묵인과 공조 (미국의 치명적인 오판)
이 책의 가장 충격적인 고발 중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정보기관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보스니아 유입을 방관하거나 심지어 은밀히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냉전 종식 직후 유일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발칸 반도의 불안정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세르비아계의 팽창을 저지해야 하는 전략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냉전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미국 정보당국과 동맹국들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수중 하에 협력하여 아랍 무자헤딘과 무기 밀수 네트워크가 보스니아로 유입되는 루트를 묵인했다.
심지어 CIA는 이란의 정보기관(MOIS)과 손을 잡고 보스니아 무슬림 군대에 무기를 공급하는 밀수 작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란은 중동 내 반미 전선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칸 반도에서는 미국과 기묘한 이해관계의 일치를 이루며 보스니아 내 무슬림 세력을 지원했다.
서방 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잠시 보스니아의 방어를 돕고 나면 전쟁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떠날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을 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대참사로 이어졌다.
서방의 묵인과 지원 속에서 아랍 무자헤딘은 보스니아 군대 내에 독자적인 여단(엘 무자히드 여단)을 창설했고, 이 부대는 잔인한 참수 작전, 포로 학살, 테러 전술을 보스니아 전장에 들여왔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세르비아계 격퇴라는 단기적 목표를 위해 이를 눈감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유럽의 심장부에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리스트들의 안식처를 마련해 준 셈이 되었다.
3.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전략적 도약
보스니아 전쟁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에게 있어서 단순한 구호 활동의 장이 아니라, 조직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자금을 세탁하며 테러리스트들을 실전 훈련시키는 최고의 시험대였다.
쉰들러는 빈 라덴이 직접 보스니아를 방문하거나 발칸 반도의 작전을 긴밀히 지휘했으며, 빈 라덴의 측근들이 보스니아 시민권을 취득하고 여권을 발급받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당시 보스니아 정부는 서방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랍 무자헤딘에게 공식 시민권을 부여했고, 이는 이들에게 합법적인 유럽 내 신분을 제공했다.
보스니아에서 단련된 아랍 전사들과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무슬림 청년들은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 전역에 세포 조직(Cell)을 형성했다.
이들은 위조 여권 제작, 자금 세탁, 무기 밀거래 기술을 습득했으며, 이는 훗날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1998년 아프리카 미 대사관 폭탄 테러, 그리고 궁극적으로 2001년의 9·11 테러를 수행하는 핵심 인프라로 능했다. 즉, 9·11 테러범 중 일부가 보스니아 내전 참전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발칸 반도와 연계된 네트워크를 활용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911테러는 미국이 꾸며낸 사건으로 드러남)
4. 보스니아 사회의 변형과 전후(戰後)의 그림자
외래 이슬람 극단주의의 유입은 보스니아 사회 내부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수백 년 동안 발칸 반도 특유의 온건하고 관용적인 이슬람 문화를 유지해 온 보스니아 무슬림 사회는 전쟁 기간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사우디 자본에 의해 건립된 와하비즘 사원과 학교들을 통해 급격히 근본주의화되었다.
쉰들러는 전후 보스니아가 형식적으로는 다민족 평화 체제를 갖추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국가들의 자금력에 종속된 극단주의 온실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보스니아 정부는 전쟁 중 자신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네트워크의 활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보스니아는 유럽 내에서 지하디스트들의 주요 충원 풀 중 하나로 변모했다.
2010년대 이슬람 국가(IS)가 흥행했을 때 유럽 출신 IS 대원 중 상당수가 보스니아 및 발칸 반도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1990년대에 뿌려진 씨앗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를 방증한다.
□ 결론 (지정학적 단기 편의주의가 낳은 역사적 교훈)
《언홀리 테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고도 뼈아프다.
이 책은 명분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전쟁의 이면에서, 국가의 생존이나 전략적 편의를 위해 극단주의 세력과 손을 잡는 행위가 얼마나 파괴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를 경고한다.
미국과 서구 정보기관들은 세르비아의 폭정을 저지한다는 명분 아래 아랍 무자헤딘의 보스니아 진입을 방관했고, 단기적으로는 전선을 유리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은 알카에다라는 거대한 괴물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
존 쉰들러는 이 책을 통해 국제 정치에서 도덕적 순수성을 잃어버린 타협과 묵인이 어떻게 수십 년간 지속되는 안보 위기로 이어지는지, 그 잔혹한 진실을 냉철하게 고발하고 있다.
< 존 쉰들러(John R. Schindler)의 저서 (언홀리 테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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