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

코리아황제 1897 뉴욕 광업회사의 대주주, 황금의 나라-신라

예덕나무 2026. 7. 30. 16:06

황금의 나라 신라의 후예, 코리아 황제는 1897년 뉴욕 광업회사의 대주주였다.

1902년 6월14일 뉴욕타임즈기사에 있다.

원숭이가 살았던 조선은 어디일까?

 

1. 신라와 황금의 나라

아랍 지리학자들의 기록(알 마크디, 알 카즈인, 알 이드리시)을 인용하며, 신라를 금이 매우 흔하고 원숭이가 서식하는 풍요로운 땅이었다.

1. 알 이드리시 (Al-Idrisi, 1099~1166)의 기록

12세기 중세 이슬람의 대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저서 《천애횡단갈망자의 산책》(Nuzhatu'l Mushtaq fi Ikhtiraqi'l Afaq, 일명 로제르의 서)에서 신라의 풍요로움을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묘사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그곳이 너무 살기 좋고 풍요로워)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어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목줄)도 금으로 만든다."

2. 참고: 알 마크디시(Al-Maqdisi)와 알 카즈비니(Al-Qazwini)의 관련 기록

질문에서 언급하신 내용과 맞닿아 있는 다른 아랍 학자들의 대표적인 신라 묘사는 다음과 같다.
  • 알 마크디시 (Al-Maqdisi, 10세기 사학자):
    저서 《창세와 역사서》에서 신라인들의 화려한 생활상을 다음과 같이 전했음
    "신라인들은 집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한다. 밥을 먹을 때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
  • 알 카즈비니 (Al-Qazwini, 13세기 사학자):
    저서 《제국유적과 인류소식》에서 신라의 자연환경과 풍요로움을 극찬하며 이전 세대의 기록들을 인용
    "신라는 살기 좋고 이점이 많으며, 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정착해서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중세 아랍의 지리학자들은 신라를 단순히 먼 동방의 나라가 아니라, 방대한 금 자원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춘 '황금의 나라이자 지상 낙원'으로 인식하고 기록에 남겼다.
  • 한반도 경상도 지역에는 원숭이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신라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위치와는 다른 곳(아메리카 대륙 등)에 있었다.

2. 금광 사업과 코리아 황제

  • 1902년 뉴욕 타임스 기사를 근거로, 코리아 황제가 운산 광산 등 대규모 금광 사업의 대주주였다.
  • 당시 미국 자본이 투입된 운산 광산 운영 배경을 설명하며, 지리적 거리상 조선 한양에서 이러한 운영이 직접 이루어지기 어려웠음을 지적하고, 실제 무대가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The Klondike Gold Rush Prologue – Yukon Archives

The Fortymile area lay within the traditional territory of the Hän. One group of Hän, the Tr'ondëk Hwëch'in, hunted, fished, trapped and gathered throughout the region; they also had a seasonal fish camp at the mouth of the Klondike. They were experienced traders, bartering and selling goods to other First Nations and to the white newcomers.

In the summer of 1896 the Yukon was still a district of the Northwest Territories, with its capital in Regina and its boundaries the source of an ongoing dispute with the United States. A few small trading posts were scattered along the Yukon River.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의 서막

– 유콘 기록보관소(Yukon Archives)

포티마일(Fortymile) 지역은 원래 한(Hän)족의 전통적인 영토였다. 
한족의 한 집단인 트론덱 흐웨친(Tr'ondëk Hwëch'in)은 이 지역 전역에서 사냥, 낚시, 덫사냥, 채집을 하며 생활했으며, 
클론다이크강 하구에는 계절마다 이용하는 어로(漁撈) 기지도 운영했다.

그들은 숙련된 상인이기도 해서, 다른 원주민 부족(First Nations)은 물론 새로 들어온 백인 이주민들과도 물물교환을 하거나 물품을 판매했다.

1896년 여름 당시 유콘은 아직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ies)의 한 행정구역이었으며, 수도는 레지나(Regina)에 있었다. 
또한 유콘의 경계는 미국과의 분쟁 대상이 되고 있었다. 
당시 유콘강을 따라서는 소규모 교역소 몇 곳만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1902년 6월 14일 뉴욕타임즈 기사
한국의 대규모 금광·동양합동광업회사의 한국 내 성공적인 운영.
뉴욕타임스 특보. 타코마(워싱턴주), 6월 13일

  - L. S. 헌트(L. S. Hunt)와 한국 황제가 주로 소유하고 있는 한국 금광 의 총지배인 해리 F. 메서브(Harry F. Meserve)가 5년 전 한국으로 떠난 이후 첫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

  - 그는 헌트가 상임이사로 있는 뉴욕 법인 동양합동광업회사 (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 소유의 자산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 10년 전 퓨젯 사운드(Puget Sound)에서 재산을 잃은 헌트는 한국으로 향했다.
그는 황제로부터 광범위한 채굴권을 얻어냈고, 황제를 대주주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뉴욕 투자자들이 초기 작업을 위한 자금을 조달했다.
최근 이 회사의 운영 규모는 크게 확장되었다.
25마일 사방약 64km²의 채굴 허가 구역 내에서 7개의 광산이 개발되었다. 약 1,930만 평

  - L. S. 헌트(L. S. J. Hunt)와 한국 황제가 주로 소유하고 있는 한국 금광 뉴욕 법인 동양합동광업회사 황제를 대주주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뉴욕 투자자들이 초기 작업을 위한 자금을 조달.

  - 25마일 사방(약 64km²)의 채굴 허가 구역 내에서 7개의 광산이 개발 = 1,936만 평
현재 가동 중인 공장 시설은 120개의 분쇄기(stamps)와 2개의 청화법(cyanide) 제련 공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다른 80개 분쇄기 규모의 공들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

  - 나머지 노동자들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로, 이들은 매일 금으로 25센트를 받는다.
회사의 자본금은 500만 달러로 증자 중
뉴욕의 H. C. 퍼킨스(H. C. Perkins)가 사장

   - 뉴욕 법인 동양합동광업회사 (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 대주주 
L. S. J. 헌트 (Leigh S. J. Hunt)
코리아 황제
H. C. 퍼킨스 (H. C. Perkins)


L. S. J. 헌트 (Leigh S. J. Hunt) 이력
1855년 ~ 1933년
교사를 거쳐 아이오와 주립대 총장
1886년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 인수
1887년에 웨스턴 철강회사에 참여
커크랜드 시(워싱턴 킹 카운티)를 세워
1893년 철강회사 망함, 1894년 신문사 매각
동양통합광산회사 운산 광산 운영

 ▶ 뉴욕 법인 동양합동광업회사 (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 기업정보
   1882년 조선-미국 조약
   호레이스 뉴턴 알렌 - 고종
   미국에서 대출을 받고 광산을 담보로 제공 꼬셔
   제임스 R. 모스 영입 - 운산카운티 광산권리 획득
   지분 25%를 고종에게 양도 계약 - 투자 유치 실패
   1897년 L.S.J 헌트 OCMC를 설립

웨스트버지니아 설립
   모스가 헌트에게 운산 광산권 3만달러 매각
   1899년 OCMC는 고종 지분 10만 불에 매입
   연간 2,500원 세금 납부

The Klondike Gold Rush Prologue - Yukon Archives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프롤로그 - 유콘 아카이브)

The Fortymile area lay within the traditional territory of the Hän. One group of Hän, the Tr'ondëk Hwëch'in, hunted, fished, trapped and gathered throughout the region; they also had a seasonal fish camp at the mouth of the Klondike. They were experienced traders, bartering and selling goods to other First Nations and to the white newcomers.

In the summer of 1896 the Yukon was still a district of the Northwest Territories, with its capital in Regina and its boundaries the source of an ongoing dispute with the United States. A few small trading posts were scattered along the Yukon River.


포티마일 지역은 한(Hän)족의 전통 영토 내에 있었습니다. 한족의 한 그룹인 트론덱 훼친(Tr'ondëk Hwëch'in)은 이 지역 전역에서 사냥, 낚시, 덫 사냥 및 채집을 하였으며, 클론다이크 강 하구에 계절별 물고기 캠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숙련된 상인들로서, 다른 퍼스트 나언스(원주민)들과 새로 온 백인들에게 물건을 물물교환하고 판매했습니다.

1896년 여름, 유콘은 여전히 노스웨스트 준주의 행정 구역이었으며, 수도는 리자이나에 있었고 그 경계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분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유콘강을 따라 몇 개의 작은 무역항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1896년 ~ 1897년

< 운산광산 자료 - 한반도엔 없는 지형이며, 근로자가 외국인이 많다 >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 천지편 지리류(天地篇 地理類) 금은동철주옥(金銀銅鐵珠玉)
산동산금변증설 [山童產金辨證說]

화성금수산유정 기수황 華城金水山有井 其水黃 감여자언기중산정금운 堪興者言其中產精金云
화성의 金水山에는 우물이 있는데 그 물빛이 누렇다. 풍수가들은 그 안에 순금이 난다고 말했다.

대저아동군읍산금처갱다 [大抵我東郡邑產金處更多]
대체로 우리 동국 각 군현 가운데 금이 나는 곳이 더욱 많다.

해서수안군유금광 서관자산부우성 海西遂安郡有金壙 西關慈山府尤盛
해서 遂安郡에 금광이 있고, 서관 慈山府가 특히 성하다

영남성주목호남임실현 嶺南星州牧湖南任實縣 관동선선군홍주현병산금 關東旋善郡洪州縣竝產金
영남 성주, 호남 임실, 관동 선선군, 홍주 등에서도 모두 금이 난다

유금광처산동 망기지지 凡有金鑛處山童 望氣知之
무릇 금광이 있는 곳의 산은 민둥산이 되니, 기운을 바라보아 그것을 알 수 있다

우왈 범토개생금 又曰凡土皆生金
또 말하였다. 무릇 모든 흙은 금을 낳는다

도사우수 취황금자 유문기지 淘沙于水 取黃金者 猶問其地
강물의 모래를 씻어 황금을 얻는 사람도 그 땅을 가려 찾는다

소니우구 즉무처불가 掃泥于衢 則無處不可

그러나 길거리의 흙을 쓸어도 금을 얻지 못할 곳이 없다

이구중만인행처 유비니언 以衢中萬人行處 有肥膩焉

큰 길은 만인이 다니는 곳이라 기름기와 때가 쌓인다

일월증입 록지징지 중자재하 日月蒸入 盞之澄之 重者在下

해와 달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것을 거르고 가라앉히면 무거운 것이 아래에 남는다

이연초전지 백금출의 [以鉛硝煎之白金出矣]
이것을 연(鉛)과 초석으로 달이면 백금(白金)이 나온다.

우언태양소조지지개생금 난고야 又言太陽所照之地皆生金 暖故也

또 말하였다.태양이 비추는 땅은 모두 금을 낳는다. 따뜻하기 때문이다

통구인족소마갱난 고생금교다 通衢人足所磨更暖 故生金較多
큰길은 사람 발에 밟히 더욱 따뜻하므로 금이 더 많이 생긴다

황금본일정 백금본월화 黃金本日精 白金本月華
황금은 본래 태양의 정기이고, 백금은 본래 달의 빛이다.

[지구도] 여송국다황금 [地球圖] 呂宋國多黃金
지구에는 여송국에 황금이 많다고 하였고

[직방외기] 북아묵리가주내 [職方外記] 北亞墨利加州內 금가서랍지 금은지천 [金加西蠟地 金銀至賤]
직방외기에는 북아메리카의 금가서랍 지방에 금과 은이 매우 흔하다고 하였다
 
 
황금의 카스티야 지도 - 금가서랍

 

3. 원숭이와 조선의 기록

  • 세종실록에 등장하는 원숭이 관련 기록과 '원숭이 부대'에 대한 역사적 그림 자료를 제시하며, 조선 시대에 원숭이가 존재했다.

4. 언어와 사서의 재해석

  • 산스크리트어와 한자를 재해석하여 '사탕수수'나 '당판' 같은 단어의 의미를 우리말과 연결된다. 기존 사서에 등장하는 지명과 물산이 현재 한반도 지형과 맞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역사의 무대가 왜곡되었다.
당(糖) 사탕, 엿
米(쌀 미) + 唐(당나라 당)
당에서 나온 : 사탕수수 사탕수수(砂糖蜀黍)

사탕수수(砂糖蜀黍) 학명 : Saccharum officinarum
당(糖); 엿 당, 엿 탕
다리다 = 고다 (끓여)

당 = 달여(끓여) = 탕 엿을 고운다 덩어리 진 것

사탕수수(砂糖蜀黍) 학명 : Saccharum officinarum
1905년 유카탄 반도 (애니깽 사건)

 
현 한반도 인근엔 사탕수수를 재배하지 않는다.

태평광기 권481 만이 2 신라
太平廣記 卷四百八十一 蠻夷 二 新羅
북송 초(977~978년) 이방(李昉) 500권으로 집대성한 방대한 설화 총집

謂曰[위알] 爾欲爲我築糖三版乎[이욕위아축당삼판호] 爾欲鼻長一丈乎[이욕비장일장호]
이르기를 "너는 우리를 위해 당(糖) 삼 판을 쌓겠느냐 아니면 코가 한 장이나 길어지겠느냐?" 하였다.

其弟請築糖三版[기제청축당삼판] 三日[삼일] 饑困不成[기곤불성] 求哀于鬼[구애우귀]
동생이 당(糖) 판을 쌓겠다고 청했으나, 사흘 동안 굶주리고 지쳐 이루지 못하고 도깨비에게 애걸했다.

鬼乃拔其鼻[귀내발기비], 鼻如象而歸[비여상이귀]
도깨비가 이에 그 코를 뽑아버리니, 코가 코끼리처럼 되어 돌아왔다.

 
 
 
<부자요술램프 '황금의 나라 신라의 후예, 코리아 황제는 1897년 뉴욕 광업회사의 대주주였다. 1902년 6월14일 뉴욕타임즈기사에 있다. 원숭이가 살았던 조선은 어디일까?'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JajxsAiB10&t=224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