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만스님은 기독교 신자의 '부처님도 신인가?' 질문에 대해 '나'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실천적 수행의 길을 깊이 있게 답변한다.
1. '부처는 신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
보만 스님은 유일신의 핵심 속성인 창조성, 전지전능, 불변성을 차용하여 우리 내면의 '정신'이 가진 위대함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보는 놈'의 통찰:
육신을 포함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해, 달, 산 등)은 '보인 것'이므로 진짜 '나'가 아니다.
이 모든 현상을 분별하고 인식하는 무색(無色)·무성(無聲)·무치(無臭)의 정신이야말로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며,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짜 나'이다.
정신의 창조성:
우리가 세상을 평가하고 해석하며 삶을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곧 창조이다.
육신이라는 피조물에 갇히지 않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한 내면의 정신精神을 깨닫는 과정이 곧 신의 속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신중단(神衆壇)의 의미:
법당 오른편에 위치한 신중단은 외부의 신을 숭배하는 곳이 아니라, 온 우주를 인식하고 수많은 생각(중생)을 끊임없이 토해내는 우리 정신들의 무리를 상징한다.
2. 사후세계와 '독화살의 비유'
'죽음 이후' 사후세계에 대한 질문에 부처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던 이유를 '독화살의 비유'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낸다.
우선순위의 원리:
독화살을 맞은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화살을 쏜 사람의 신분을 묻거나 화살의 재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즉시 독화살을 뽑고 치료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
사후세계나 미래를 가정하며 불안해하는 것은, 독화살을 맞은 채 곁가지만 따지는 어리석음과 같다.
부처님은 사후에 대한 형이상학적 답변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괴롭히는 번뇌(후회, 분노, 불안)를 제거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이 수행의 본질이다.
죽음에 대한 통찰:
스님은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과정에 비유하며, 죽음 역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생명의 과정일 뿐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3. 스승을 넘어 '법(法)'으로 귀의하는 길
마지막으로 스님은 자신(보만 스님)이라는 개인에 대한 의존을 경계한다.
인격 숭배의 위험성:
스승 개인의 카리스마나 인기에 의존하면, 스승이 사라질 때 수행자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이는 '무상(無常)'의 이치에 어긋나는 길이다.
법(法)의 팬이 되기:
2,600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스님은 청중이 자신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공부하는 것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4. 불교 공부의 궁극적 목적
외부의 대상이나 인물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을 깨달아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와 해탈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 보만 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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