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삶 영계

단전(석문) 호흡법, 무심관無心觀

예덕나무 2026. 2. 9. 16:43

호흡은 가늘고 깊고 고른 조식을 한다.

숨을 멈추는 지식이나 근육의 힘으로 만들어서 호흡하면 안된다.

 

단전에 기운이 모일수록 자연스럽게 호흡이  깊어지므로 '편안하게 하되 평소보다 조금 깊이 호흡한다'는 느낌이면 된다.

중요한 것은 호흡이 점차 깊어져서 단전에 닿게 해야 하는 것이다.

 

호흡이 깊어져 단전에 닿으면 점차 호흡의  길이 열린다.

호흡의 길이 열리면, 기운의 유입이 많아지고, 심신이 상쾌하여 아늑한 느낌  속에 있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수련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용호비결>에는 이러한 경험을 편향증험이라 하고, 단전과 통하는 문을 현빈일규라 하여 공부가 바른길을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여기서 좀 더 정진하면 단전이 자리 잡히고 단전그릇이 만들어집니다.

 

호흡의 길을 따라 단전에 기가 모이면 석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석문을 열려면 한 점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

석문에 집중이 잘 될수록 기는 잘 모이고, 기기 많이 모일수록 석문은 빨리 열린다.

석문이 열리면 곧 단전이 자리를 잡는다.

 

 

 

무심관 無心觀

 

무심관無心觀은 마음의 여백을 음미하는 것이다.

마음의 여백(無心)이란 시간적으로는 생각 이전이요, 공간적으로는 생각과 생각 사이다.

 

수련 중에 고요함과 맑음을 느끼는 것으로써 무심관을 단련한다.

 

일상 중에 잡념이 떠오르면 '이런 생각도 드는구나!' 하고 무심한 상태에서 바라본다.

생각은 흘러서 사라지고 다시 여백이 느껴진다.

때로는 생각과 생각을 오가며 여백의 사이가 매우 짧은 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생각에  휘둘리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조금씩이라도 생각 사이의 여백을 느껴 본다.

마음도 훈련이 되면 훈련된 마음이 더 자연스러워진다.

 

생각이 많아지고 감정이 휘몰아쳐 고통스러울 지경이면 ' 이런 감정도 있구나!' 하고 감정의 느낌을 음미해 본다.

생각은 멈추고 감정만 느껴 본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음미하는 것은 처음은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감정의 걸림을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정화되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점점 더 쉬워진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과 휘둘리는 것은 다르다.

내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 감정이 나는 아니다.

나의 주체인 마음의 여백에서 대상인 감정을 느껴본다.

 

습관적인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무심한 상태에 머무른다.

행동하기 전에 잠깐 멈추고 행동의 반복되는 패턴을 살펴본다.

 

나는 내가 습관처럼 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고요함과 맑음의 상태에 자주 들어갈수록 행동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을 멈춘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물어야 한다.

질문은 에너지의 방향을 전환시키고 답을 찾게 한다.

 

자기분석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입장을 달리 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다.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은  생각이나 감정에 압도되어 휘둘리고 만다.

 

자기 입장에 함몰되지 않고 올바로 사고하려면 먼저 무심관을 닦아야 한다.

무심관으로 정화력을 얻고 자기분석을 하면 많은 인과를 풀어낼 수 있다.

 

마음을 닦아 세상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면 반드시 무심관을 익혀야 한다.

마음공부는 무심관에서 시작하여 중심관, 신성관, 불이관으로 나아가고, 다시 무심관으로 끝난다.

 

 

 

<정석현님의 '마음을 닦아 세상의 주인으로 산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