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삶 영계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뿐 - 알아차림, 선업, 불선업 소멸

예덕나무 2026. 2. 24. 15:31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

 

마음은 한 순간에는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선한 마음과 불선한 마음이 동시에 있을 수 없습니다. 

선한 마음을 유지하는 동안 불선한 마음이 일어나지 못하고, 

또한 불선한 마음이 일어나면 결코 선업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1) 마음은 항상 알아차림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업을 짓는 마음은 선심 아니면 불선심입니다. 

수행자가 알아차림으로  마음을 꽉 채우고 있으면 불선심인 탐진치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욕계에 사는 중생은 탐진치의 힘이 강해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자리에 즉시 불선심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알아차림을 유지해서 마음을 선심으로 가득 채울 때만 불선업을 막을 수 있습니다. 

 


2) 알아차림은 불선한 업을 소멸합니다
우리들은 선업의 주머니와 불선업의 주머니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업의 과보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교대로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불선업의 주머니는 줄이고 선업의 주머니를 키워야 합니다. 

불선업을 소멸하는 방법

첫째, 불선업은 괴로움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그 괴로움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서 그것을 과보로 수용합니다. 그러면 불선한 업의 과보를 하나 받았으므로 불선업이 하나 소멸된 것입니다.  


둘째, 이렇게 현재의 괴로움을 알아차리면, 알아차린 마음은 바른 말과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선업의 주머니를 키운 것입니다.  


셋째, 알아차림이 있으면 계율을 지키므로, 새로운 불선업을 막고, 새로운 선업을 키웁니다. 
이런 방법으로 불선업의 주머니는 줄이고, 선업의 주머니를 키웁니다. 

이처럼 업장을 소멸하는 방법은 알아차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알아차림은 이전에 행한 보시, 지계, 수행이라는 선업의 공덕이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한 번씩 알아차림을 하면, 그것은 불선업의 주머니를 줄이고 선업의 주머니를 키우며, 다시 알아차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듭니다.  


3) 선업과 불선업은 섞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도 하고 불선한 일도 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도 때로는 커다란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심어놓은 불선업이 과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과 불선업의 씨앗은 각각의 과보를 가져올 뿐, 섞여서 상쇄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굴러갑니다.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면 불선업의 주머니가 열린 것이며, 지금 행복하다면 선업의 주머니가 열린 것입니다. 

씨앗은 열매를 맺으면 소멸됩니다. 

그래서 지금 괴로우면 불선업의 씨앗 하나가 열려서 소멸된 것이고, 지금 행복하면 선업의 씨앗 하나가 열려서 그 씨앗은 소멸된 것입니다. 

또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것을 법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선택한다면, 이것은 선업의 주머니가 열린 것입니다. 

평소에 보시, 지계, 수행을 한 공덕이 있으면 어려울 때 알아차림이라는 지혜의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보통은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괴로움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즐길 거리를 찾거나, 남을 원망하고 화를 내며,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새로운 불선업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다시 불선업의 주머니가 열린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다가 익사하는 경우가 있고, 정신을 차려 헤엄을 쳐서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의 경우는 괴로움에서 반응하여 다시 괴로움을 선택한 것이고, 뒤의 경우는 괴로움에서 정신 차리고, 그 괴로움을 수용하여 오히려 지혜를 얻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선업주머니를 열 것인가, 불선업주머니를 열 것인가, 현재를 당당하게 수용하는가, 현재를 피하려고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또한 평소에 알아차림을 얼마나 했는가의 차이입니다. 

평소에 쌓아두었던 알아차림의 힘이 어려울 때 선업의 주머니를 열어줍니다.

 


4) 만일 쌓아놓은 선업이 없어서 계속 힘들 때  
만일 삶이 계속 힘들 때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어 이렇게 사는가 보다’라고 운명 탓을 하는데, 사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과거에 복이 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잘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인과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복이 없는 것을 원망하고 누가 도와주기만을 바란다면 결코 더 나은 삶, 복이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복이 될 원인을 새로 심어야합니다. 

그 시작이 알아차림입니다. 

지금부터 알아차림으로 계율을 지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형편에 맞는 보시를 하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시작하면 새로운 복을 짓습니다. 

마음은 한 순간 하나이므로 알아차림을 하는 순간 어떤 불선업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복福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과거는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장 손쉽게 선업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알아차림을 해서 현재를 수용하고, 그래서 생긴 편안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에 행한 업의 과보를 잘 소화해서, 과거에 지은 업의 지배를 받지 않고, 현재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멋진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속에는 최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념처 수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