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

진짜 이순신 장군은 3m가 넘는 붉은 머리 거인이었다

예덕나무 2026. 3. 12. 15:10

이순신 장군은 2m 되는 칼을 휘두르는 3m 거인이었다.(추정하기로는  붉은머리 붉은 수염
카리브해는 일본군 스페인과 스페인 식민지 왜구가 날뛰었고, 우리나라 남해였다.
이순신은 카리브해 해적을 소탕했다.

 

영국은 우리나라의 속국이었다.
거북선 앞세우고 물때와 조수를 이용했다.


풍신수길은 페레페2세, 무적함대 앞세워 임진란을 일으켰다.
대마도 바하마의 나사우 파라다이스섬에 도쿄를 건설하고, 
유럽의 모든 병사들 100만이 침입했다.
조명연합군 140만명이 막아냈다.

지도에 보면 인디아해 중국해라고 표기되어 있다. 프란시스 드레이크경이 바로 이순신장군이다.
진짜 말처럼 생긴 섬이 대마도(바하마)이다. 바하마 이름에 말 마자가 남아 있다.

 

 

이순신장군의 칼은 길이가 2m이다.

이 큰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3m이상의 거인이 되어야 한다.

2m되는 거인도 저 장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없다.

이 시기 거인은 홍모를 가진 자들이었는데 이순신장군이 바로 붉은 머리의 거인이었다.

 

100년 전 미국 잡지에 등장한 조선의 거북선! 
심지어 영국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도 등장했던 거북선의 잠수 능력!
왜 한국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영국과 미국이 먼저 주목한 조선 수군의 과학력이었다.
그 거북선의 진짜 기능과 외국 기록 속 충격적 진실이 드러난다.

Robert Ripley의 "Believe It or Not!" 미국 신문 컬러 선데이 만화 패널

 

 

1840년 영국해군성에서 발행하나 부산항 지도이다.

이 지도를 보면 미국의 남해, 루이지에나와 해안 지형이 같다.

오른쪽은 스페인에서 그린 조선 학익진을 묘사한 지도이다.

이 해안 지형도 루이지에나와 같다.

1797년 10월 부산항이 조선항으로 약측되다

 

부산이라는 이름이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하멜표류기가 발행된 1668년 이후인데, 하멜은 일본에 제일 가까운 항구가 Pousan 이라 했고, “Pousan”이 바로 “부산”입니다. 하멜표류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지도에도 Pousan 이라는 지명(地名)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797년 10월 13일 영국해군의 브로우튼(William Robert Broughton, 1762-1821)함장이 용당포에 닻을 내렸다가 10월 21일 떠난 일이 있는데, 이것이 서양선박이 한반도에 처음 상륙(上陸)하고, 부산항을 최초로 약측(略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브로우튼은 영국군함 프로비던스(H.M.S. Providence, 400톤급)호의 함장이지만, 그는 1797년 5월 모함인 프로비던스호가 유구열도의 산호초에서 난파당하자 87톤급의 스쿠너형 부속선을 가지고 동해연안을 탐사하면서 10월에 부산으로 온 것입니다.

 

브로우튼 일행이 부산에 머문 8일 동안 수심을 조사하고 해안선을 약측(略測)한 결과 작성한 해도가 사진 1과 같은데, 이 해도는 그의 탐사항해기(Voyage of Discovery to the North Pacific Ocean)가 1804년 5월 발행되면서 소개되었습니다. 항구 이름이 부산항이 아니라 “조선(Thosan)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이 안 통하니 손짓 발짓으로 여기가 어디냐고 물은 대답이 “조선”이었습니다. 묻는 쪽은 항구 이름을 물었으나, 답하는 쪽은 조선 땅이라고 한 것이 “Thosan Harbour(조선항)”이라는 별칭이 생겨난 경위입니다. 브로우튼은 절영도 남서쪽 끝 상이말의 위도와 경도를 측정했고(북위 35도 2분, 동경 129도 7분), 조선말 어휘와 채소(菜蔬)의 종류도 조사해서 그의 항해기에 소개했습니다. 그가 채록한 어휘는 1980년 10월호 “현대해양” 혹은 1988년 11월 발행된 “해양학에서 본 한국학”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2는 영국해군성 수로부에서 1840년 4월 해도번호 1259호로 1797년 브로우튼이 조사한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행한 부산항 해도인데, “Chosan Harbour"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이말의 영문 별칭이 Cape Vashon으로 나와 있고, 오륙도를 Black Rocks라 하는 등 5곳에 영국식 별칭을 부여했는데, 이들은 브로우튼의 탐사항해기에 의해서 명칭을 붙였습니다. 영국해군성 수로부에서 브로우튼이 작성한 약측 부산항도를 40여년이 지난 1840년에 공식 해도로 발행한 것은, 1840년부터 영국이 한반도 주변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해도나 지도에서는 발행한 때 보다 측량한 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해도가 잘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프랑스 주간 화보 '륄스트라시옹' 1856년 1월 19일자에 실린 삽화. '코리아의 동해안, 초산항(조선항)의 주민'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음.(김장춘 교수 제공)
한반도의 거문도 풍경과는 사뭇 다른 장면들이 많이 나옴

 

 

조선에서 제후국 영국(영길리국)에 충렬왕을 파견한다.

초상화를 보면 서양인과 유사한 외모를 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영국에 충렬왕을 관리로 보내는 내용이 있다. 

 

 

충렬왕 파견을 했다는 것을 뒷받침 하는 것이 이 조선의 세칙을 담은 문서이다.

영길리국(영국)에 세금을 징수했던 자료이다.

이것을 보면 영국에 조선관리를 파견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조선 중국 코리아연방 시대때 대조선이 수백 수천의 도호부를 두고 세금을 지우고 걷는 것에 관한 규칙을 정했던 세칙. 로서아(러시아), 아란타(네덜란드-대만), 불란서국(프랑스), 영길리국(영국), 아묵리가국(아메리카국)으로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