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 6월 9일 기록을 보면,
"대마도는 본래 우리 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땅이었는데 섬이 사람이 살기 힘들어 왜놈들이 거류하게 놔두었던 것이다.


"상왕이 중외(中外)에 교유하기를,
"병력을 기울여서 무력을 행하는 것은 과연 성현이 경계한 것이요, 죄 있는 이를 다스리고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제왕으로서 부득이한 일이라, 옛적에 성탕(成湯)이 농삿일을 제쳐 놓고 하(夏)나라를 정벌하고,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6월 같이 더운 때에 험윤(玁狁)023) 을 토벌했으니, 그 일에 있어 비록 대소는 다름이 있으나, 모두가 죄를 토벌하는 행동은 한 가지라.
대마도는 본래 우리 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으로부터 변경에 뛰놀기 시작하여 마음대로 군민을 살해하고, 부형을 잡아 가고 그 집에 불을 질러서, 고아와 과부가 바다를 바라보고 우는 일이 해마다 없는 때가 없으니, 뜻 있는 선비와 착한 사람들이 팔뚝을 걷어붙이고 탄식하며, 그 고기를 씹고 그 가죽 위에서 자기를 생각함이 여러 해이다.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 강헌 대왕이 용이 나는[飛] 천운에 응하여 위덕이 널리 퍼지고 빛나서,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해 주시는 덕을 입어 그렇지 않으리라 믿었더니, 그러나 그 음흉하고 탐욕 많은 버릇이 더욱 방자하여 그치지 않고, 병자년에는 동래(東萊) 병선 20여 척을 노략하고 군사를 살해하니, 내가 대통을 이어 즉위한 이후, 병술년에는 전라도에, 무자년에는 충청도에 들어와서, 혹은 운수하는 물품을 빼앗고, 혹은 병선을 불사르며 만호를 죽이기까지 하니, 그 포학함이 심하도다.
두 번째 제주에 들어와 살상함이 많았으니, 대개 사람을 좋아하는 성낸 짐승처럼 간교(姦狡)한 생각을 숨겨 가지고 있는 것은 신과 사람이 한 가지로 분개하는 바이지마는, 내가 도리어 널리 포용하여 더러움을 참고 교통하지 않았노라.
그 배고픈 것도 구제하였고, 그 통상을 허락하기도 하였으며, 온갖 구함과 찾는 것을 수응(酬應)하여 주지 아니한 것이 없고, 다 같이 살기를 기약했더니, 뜻밖에 이제 또 우리 나라의 허실을 엿보아 비인포(庇仁浦)에 몰래 들어와서 인민을 죽이고 노략한 것이 거의 3백이 넘고, 배를 불사르며 우리 장사(將士)를 해치고, 황해에 떠서 평안도까지 이르러 우리 백성들을 소란하게 하며, 장차 명나라 지경까지 범하고자 하니, 그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하며,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어지럽게 함이 너무 심하지 아니한가.
내가 삶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잃어버리는 것을 오히려 하늘과 땅에 죄를 얻은 것같이 두려워하거든, 하물며 이제 왜구가 탐독(貪毒)한 행동을 제멋대로 하여, 뭇 백성을 학살하여 천벌을 자청하여도 오히려 용납하고 참아서 토벌하지 못한다면, 어찌 나라에 사람이 있다 하랴.
이제 한창 농사짓는 달을 당하여 장수를 보내 출병하여, 그 죄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아아, 신민들이여, 간흉한 무리를 쓸어 버리고 생령을 수화(水火)에서 건지고자 하여, 여기에 이해(利害)를 말하여 나의 뜻을 일반 신민들에게 널리 알리노라."
하였다.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좌의정 박은이 상왕에게 계하기를,
"이제 적왜(賊倭)가 중국에 들어가 도적질하고 본도로 돌아오는 것이 곧 이때이므로, 마땅히 이종무 등으로 다시 대마도에 나가 적이 섬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맞아서 치게 되면, 적을 파함에 틀림없을 것이니, 진실로 진멸(殄滅)시킬 기회를 잃지 마소서."
하니, 상왕이 그렇게 여겼다."
'적왜가 중국에 들어가 도적질을 하고 본도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왜놈들의 노략질 역사와는 다르다.
실제 왜놈들이 중국도 노략질했던 것이다.
조선 안에 조선의 황제가 있는 곳이 중국이었다.
중국은 조선의 수도자치구로 기록되어 있다. 또 명나라이기도 하다.

루이스프로이스가 쓴 일본사에 대마도의 위치가 나온다.
대마도는 쿠바의 '평호' 고요한 바다로부터 30레구아(약 170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그래서 지도에서 평호에서 대마도(바하마)까지 거리를 재어보면 170km정도가 나온다.




아래 지도는 쿠바가 '지팡구-지팡-재팬'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또 자바섬도 나온다.
현재는 인도네시아에 자바섬이 있는데, 이것도 역사왜곡을 위해 지명이동된 것으로 보인다.
또 북미를 인디아라고 표기하고 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기록된 대마도의 크기에 관한 묘사이다.
| <대마도의 크기에 대한 기록> 루이스 프로이스는 《일본사》에서 대마도를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 설명하며 그 크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기록 구절: "이 섬(대마도)은 남북으로 약 25레구아(Legoas, 약 140km), 동서로 약 10레구아(약 56km)에 달한다" 현재 길이가 더 길게 나오는 것은 당시보다 해수면 높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실 측정길이 : 174km × 64km 프로이스는 대마도가 조선과 일본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했으며, 실제 오늘날 대마도의 길이는 약 82km 정도로 현재의 대마도는 진짜 대마도가 아니다. 플로리다 반도 아래의 바하마가 루이스프로이스가 기록한 길이와 유사하다. |


루이스 프로이스는 히데요시가 파라다이스 섬 위에 전무후무한 규모의 화려한 궁전과 정원을 건설하여 그곳을 '낙원'처럼 꾸몄다고 기록하고 있다.
프로이스는 이 섬의 길이를 1레구아(약 6km), 폭을 **반 레구아(약 3km)**라고 기록했다.

재미있는 지명이 있는데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아리마'가 있다.
열도일본의 '아리마'와 지명이 같다.
카라브해의 수많은 섬이 진짜 열도 일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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