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 70% 넘는 기록이 다 가짜다. 20세기 초, 미국과 소련이 합동으로 감행한 '쟁기작전(Operation Plowshare)'은 단순한 핵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던 조선의 강역을 파괴하고 인위적으로 바닷길을 열어 역사를 은폐하려는 거대한 음모였다. 본 영상에서는 채희석님이 고증한 1405년 당시의 '조선 천하도'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밝힌다. 베링 해협의 정체: 현재의 베링 해협은 바다가 아니라, 아시아와 북미를 잇는 거대한 가교였으며 그 위로 용만 압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 70% 넘는 기록이 다 가짜다. 20세기 초, 미국과 소련이 합동으로 감행한 '쟁기작전(Operation Plowshare)'은 단순한 핵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던 조선의 강역을 파괴하고 인위적으로 바닷길을 열어 역사를 은폐하려는 거대한 음모였다. 본 영상에서는 채희석님이 고증한 1405년 당시의 '조선 천하도'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밝힌다. 베링 해협의 정체: 현재의 베링 해협은 바다가 아니라, 아시아와 북미를 잇는 거대한 가교였으며 그 위로 용만 압록강(鴨祿江)이 흐르고 있었다. (해저 지형의 흔적 현재 베링해협의 수심은 평균 30~50m로 매우 얕음. 이 얕은 수심은 원래 육지였던 곳이 폭파로 인해 살짝 가라앉은 흔적이 됨) 태종의 5일 환도: 어떻게 개경에서 한양까지 단 5일 만에 이동할 수 있었을까? 대륙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수직 운하 벽란도: 산을 넘고 대륙을 관통했던 조선의 초격차 공학 기술, 벽란도 수직 운하 시스템의 실체를 공개한다. 라성(LA) 한양: 진짜 조선의 수도 한양은 한반도가 아닌 북미 대륙의 LA(라성)에 위치해 있었다. 거짓으로 점철된 동일과정설과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찬란했던 글로벌 조선 연방의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

1. 양경제도의 실체와 한반도 지형의 모순
조선 시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는 한양과 개경이라는 두 개의 수도가 있었다.
이를 '양경제도'라고 한다.
그런데 실록을 보면 양경을 왕래하느라 군사와 말들이 피곤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만약 현재 한반도의 서울과 개성 사이(약 60km)를 왕래하는 것이라면,
반나절이면 갈 거리인데 어찌 말과 군사가 피곤하겠는가?
이는 지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또한, 태종 때 한양의 숭례문에서 용산강까지 운하를 파자고 했을 때,
태종은 그곳이 모래와 자갈 땅이라 물이 빠져버릴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
하지만 현재 서울의 용산에서 숭례문 사이는 단단한 암반 지형이다.
또 운하가 없다.
반면, 한양이라고 주장하는 LA(로스앤젤레스)는 실제로 전체가 모래와 자갈 땅이다.
지질과 기후(가뭄과 기우제 기록 등)는 조작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다.



"지난 번에 이곳 송경(松京)으로 이어(移御)한 것은 길이 천사(遷徙)한 것이 아니고, 피방(避方)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종묘와 사직이 그대로 한경(漢京)에 있다."
당시 태종은 개경(송경)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공식 수도는 이미 태조가 정한 한양(한경)이었다.
신하들이 "왜 자꾸 개경에 계십니까?"라고 묻자 태종이 이렇게 답한 것이다.
"내가 지금 개경에 와 있는 것은 수도를 다시 여기로 옮긴(천도) 게 아니다. 잠시 좋지 않은 기운을 피해(피방) 와 있는 것일 뿐이다. 증거를 봐라, 국가의 근본인 종묘와 사직은 여전히 한양에 있지 않느냐."
즉, 행정적으로는 '출장 중' 혹은 '임시 집무실 가동' 상태이지, 본청(수도)을 이전한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다.
- 이어(移御): 임금이 거처를 옮김. (공식적인 이동)
- 천사(遷徙): 도읍을 완전히 옮김. 즉, '천도(遷都)'를 의미
- 피방(避方): 재앙이나 좋지 않은 기운을 피하여 잠시 거처를 옮김. (임시 방편)
- 종묘(宗廟)와 사직(社稷): 왕실의 조상신과 토지·곡식의 신을 모신 곳. 유교 국가에서 '국가의 정통성 그 자체'를 상징
- 송경은 홍산을 말하고, 한경은 나성(라성)을 말한다.
홍산과 라성 사이에 역이 9개가 있었다.

강원도는 역리 사이를 말하는데 베링해 인근이다. 이것도 놀라운 기록이다.

태종 1405년 10월 홍산(개경)에서 한양으로 이사를 한다.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드디어 향교동에 이궁을 짓도록 명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드디어 홍산에서 북미 한양(라성)으로 이궁(이사)를 한다.
| 태종 5년 10월 11일 거가(車駕)가 한경(漢京)에 이르러 종묘(宗廟)에 알현(謁見)하고, 연화방(蓮花坊)의 고(故)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조준(趙浚)의 집에 좌기하였으니, 이궁(離宮)이 아직 완성되기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의 행차가 한양에 도착하여 종묘에 인사를 올리고, 연화방에 있는 고(故) 영의정부사 조준의 집에 머물렀으니, 이는 (새로 짓고 있는) 이궁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한편 메마른 사막 한양 LA는 가뭄때문에 기우제 이야기가 매우 많이 나온다.
하도 많아 헤아릴 수가 없다.
이는 한반도에서는 가뭄이 드문데, LA 라성에서는 빈번히 일어난다.
이것만 봐도 한양(서울)이 북미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 기록은 위조가 가능한데, 이런 기후 자료는 위조를 못한 것이다.

태종 13년 7월 20일
'좌정승 하윤 등이 용산강에서 숭례문까지 운하를 팔 것을 청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에는 용산강이 없는데, 용산강이 나온다.
또 '우리나라의 땅은 모두 사석이므로 물이 머물러 있지 않으니' 라고 나온다.
현재 용산의 토질과 사뭇 다르다.
모두 사석이라고 되어 있다. 즉 사막이라는 이야기다.
LA는 운하도시였다.
운하가 많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운하를 팠다는 기록이 아주 많이 나온다.
한반도에는 운하가 없다.
그런데 이 운하를 백인들이 공사를 해서 다 덮어 버린다.
그 공사 자료가 존재한다.
※ '빛의 전사들 영상 - LA는 운하도시였다' 참조


2. 아시아와 미국은 하나의 대륙이었다
우리가 역사를 설명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압록강 주변에 핵폭탄 2,000개 가까이를 터뜨려(쟁기 작전) 강줄기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륙이 갈라져 지금의 베링해협이 된 것이다.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와 미국 땅이 딱 붙어 있는 지도가 천지에 널려 있다.
실제로 계기일식 기록을 보면,
개성이라 불리는 홍산과 한양인 LA에서 관측된 기록이 명확히 나온다.
개성(아사달)은 홍산이고, 한양은 LA이다.
LA를 '라성(羅城)'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것이 수도의 외곽성인 '나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선조 25년 7월 25일 임진란 기록에
'양경이 잇달아 함락되고' 가 나온다.
이때 양경은 개경과 한양을 말한다.
그런데 주석에는 서울과 평양이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양경(개경과 한양)이 함락되고 나서, 평양성 전투를 한다.
그래서 양경이 '서울과 평양'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난다.

3. 조선의 강역은 3만리(萬里)가 넘었을 때도 있었고, 만리라는 라고 나온다
고려사절요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우리 땅이 '만리(萬里)'라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절요에는 '고려만리지국'이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좌우의 길이가 만리라는 기록이 2번 나온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명나라 땅이 3만리라고 나와 있다.
아프리카 끝에서부터 한반도까지가 3만리다.
태종 2년에 혼일강리역대국지도가 이것을 증명한다.
태종 2년 5월 16일에 '의정부에서 본국의 지도를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 시기때는 4군6진으로 개척해서 3만리 땅이며 명나라보다 더 컸다고 나온다.
현재 중국 땅 전체를 다 합쳐도 동서 폭이 5천 리밖에 안된다.
우리 강역이 만리가 되려면 반드시 아시아와 미국 본토가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태종 2년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지도'를 보라.
아프리카 끝에서부터 그려진 이 지도가 바로 우리나라의 지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성계의 고향인 '화령'도 천산 옆에 그려져 있다.
또한 실록에 수없이 등장하는 '3천 리 유배' 기록 역시,
한반도 끝에서 끝까지가 2천 리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대륙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3천리 유배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1리는 0.576km 이다.)


4. 결론 : 역사를 보는 관점의 전환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에 갇혀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살았던 곳이라기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이자 조상의 무덤을 모시던 '소도'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부장품이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지형, 기후, 일식 기록이라는 속일 수 없는 증거를 바탕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빛의 전사들 영상 '개경과 한양 양경제도 아시아로 미국이 한덩이 베링해협은 압록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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