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삶 영계

선도란 무엇인가

예덕나무 2026. 4. 17. 13:47


선도란 무엇인가? 

선도란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 수련법이다. 

 

우리나라 상고사가 자세히 기록된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책에 보면 이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지금으로부터 5893년 전(1996년 기준에 거발환 한웅천황에 의해 세워진 신시배달국이 지금의 지나(중국)의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태백산 기슭에 세워졌다.

 

이미 이때부터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경전을 토대로 선교(仙敎) 또는 신교(神敎)라는 종교가 생겨났다.

이것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상의 모든 고등종교 예컨대 기독교, 유교, 불교의 시원(始源) 종교라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이 선교에서 파생된 심신 수련법이 선도이다.

그러나 『환단고기』의 「소도경본훈(蘇塗經本訓)」 속에 나오는 『삼일신고』에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이라는 뚜렷한 선도 수행법을 통해서 성통공완(性通功完), 즉 본성(本性)에 통달하여 마침내 공을 이룸으로써 영통개안(靈通開眼), 신인일치(神人一致), 즉 완전한 우일체(宇我一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 역시 선도의 본질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지나의 노장(老莊) 철학에서 나온 도교(道敎)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바로 이 선도 수행법의 첫 단계가 단전(丹田)호흡이다. 

내가 단전호흡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1984년 9월에 출판된 『단(丹)』이라는 소설을 읽고부터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선도수련의 양상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소설에는 구체적인 인물의 체험기를 소재로 하여 씌어졌기 때문이었다. 

신문광고를 보고 곧 책방에 가 사서 읽어보니 그 내용 중에 내가 『한국문학지(韓國文學誌)』 82년 9월호에 발표한 ‘가면 벗기기’라는 중편 소설의 주요 골자들이 그대로 옮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으므로 더욱 호기심이 발동되어 금방 읽어버렸다.

읽고 보니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족할 만한 얘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사실 도술 얘기는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품안에서 익히 들어 온 것이지만 현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다만 흥미를 돋우기 위한 이야기나 동화, 전설, 아니면 신화와 비슷한 것으로 치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그러한 얘기들이 생생한 사실로 구체적인 증거까지 제시되면서 서술되고 있으니 누구나 흠뻑 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이 책은 황당무계하다는 일부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우리나라 출판사상 처음으로 60만 부나 팔려나가는 인기를 누렸다.

바로 이 소설 속에 단전호흡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을 토대로 막상 수련을 시작해 보려고 했더니 미흡한 데가 있었다.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이 담긴 수련방법이 기술된 책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선도수련이나 단전호흡에 관한 책이라면 모조리 책방을 뒤져서 구입해 들이기 시작했다. 

10여 권의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는 단전호흡이 무엇을 말하는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지만 정작 시작해 보려고 하니 역시 잘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선도 수련원에 찾아가서 사범의 지도하에 수련을 받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직장에 매달려 규칙적인 출퇴근을 해야지, 틈틈이 창작도 해야 하는 내 처지에서는 시간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더구나 내가 다니는 직장의 성질상 일 년 열두 달, 신문의 날과 추석과 신정과 구정 이외에는 쉴 수도 없고, 더구나 토요일도 평일과 똑같이 근무해야 하니 수련을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퇴근 후에라도 수련원에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분이 있겠지만, 그것 역시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고 보면 쌓인 피로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선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선도에 대한 서적만이라도, 이미 읽은 것 이외에 새로 나올 때마다 전부 구입하여 읽어보는 것이었다. 

이런 기간이 무려 일년 이상 지속되었다. 

이러한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선도수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슨 초능력을 발휘하여 84년도인가, 우리나라에서도 텔레비전에 나와 공전의 인기를 끌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유리 컵을 모양 손도 안 대고 숟가락이나 구부리고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가 하면, 즉석에서 배추씨의 싹을 틔우든가, 격벽(隔壁) 투시를 하는 따위 요술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도술 같은 것을 터득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도수련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격완성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격완성이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도덕적 또는 윤리적 차원의 인격완성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마음과 몸이, 다시 말해서 정신과 육체가 다 같이 수련을 통하여 변화함으로써 마침내 영통개안(靈通開眼)의 경지에 이른다.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삼일신고』가 말하는, 본성을 통달하여 공을 맞히는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의미하고 마침내 신인일치(神人一致)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종교에는 공통적으로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사상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예부터 천손족(天孫族)이라 불려왔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식(選民意識)보다는 한 차원 높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이 선택한 민족이지만 우리는 곧바로 하느님의 혈통을 타고난 것이다.

『환단고기』의 일관된 사상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민족의 본성은 하느님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온갖 욕망의 때에 절어서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거울에 때가 잔뜩 끼어서 거울 본래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선도수련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이 인간의 본성과 하느님의 속성을 도로 찾자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이 본성을 찾은 대표적인 인물이 안락건 한인 천제, 거발한 한웅천황, 단군왕검과 같은 나라의 시조(始祖)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원래 성인(聖人)들이 세운 것이다.

선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을 불교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도 하며, 대각(大覺)에 이른다고도 한다.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예수의 십자가의 희생에 의지하여 영혼을 구제받는 결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기독교가 신앙의 힘으로 영혼의 구원을 포함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앙의 힘이란 근본적으로 타력(他力)에 의한, 다시 말해서 남의 힘(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에 의지하여 영혼만을 구제하는 것과는 달리 선도에서는 영혼과 육체, 다시 말해서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 보고 이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수련을 통해서 신의 경지까지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의 건강을 정신의 건강과 똑같이 소중히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선도수련의 초기 단계에 들어서면 이미 건강과 장수, 다시 말해서 무병장수(無病長壽)가 보장되는 것이다. 

선도에서는 보통 네 단계로 구분하여 이러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정충(精充), 기장(氣壮), 신명(神明), 견성(見性)이 그것이다. 

정(精)이 충만해진다는 것은 육체적인 건강을 확보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선도수련의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기(氣)가 자연히 목숨에 뻗어나가게 되며, 이 상태가 계속되면 자연히 신(神)이 밝아진다. 

신(神)이란 여기서는 정신작용, 즉 두뇌 활동을 말한다. 

정신이 밝아지면 자연히 본성(本性)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본성을 찾는 단계에 이른 상태를 영통개안, 신인일치, 성통공완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남을 위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정, 사회, 국가, 민족, 인류를 위해서 각기 제 능력에 따라 자기 신명을 바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흥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바로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 이상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지나의 도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지나의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한다. 

사람이 활동하여 인공을 가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여 철저하게 자연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자는 것인데, 여기에 늘어드는데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개념은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소 철학적이기도 한 지식을 염두에 두고 수련 준비에 임하게 되었다. 

여기서 꼭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선도는 결코 지나(中國)에서 온 것이 아니고, 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 수련법이라는 것이다.

 

 

<김태영선생의 선도체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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