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공황장애(공포증)의 한의학적 치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우울증(憂鬱症), 공포증(恐怖症) 원인
○ 간(肝)이 약할 경우 충격을 받거나 놀라면 담낭액(膽囊液)이 부족해져 발생 (이외에도 다양한 원인이 있음)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 즉 공황발작(panic attack)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말한다. |
□ 치료법
1. 죽염(竹鹽) 난반(卵礬) 요법
죽염:난반:식소다(5 : 1 : 2) 티스푼 1 + 까스활명수에 복용(하루 3회)
2. 사리장 요법
사리장[오래 묵은 것] 1일 30ml 복용
3. 다슬기기름 요법
다슬기기름+생강즙 각 25m씩 하루 2회 복용
4. 쑥뜸요법
중완·단전 뜸 (자세한 내용은 인산쑥뜸요법 참조)
5. 구운마늘 복용
깨끗한 속껍질상태로 구워 하루 10통이상 복용 (에어프라이기에 200도 13~14분)
□ 우울증/공황장애 치료 수기
<출처 【김윤세의 천일의화, 仁道】“仁山의학 만나 내 몸 전부를 수리했어요” 작성자 청학산인 김윤세>
“仁山의학 만나 내 몸 전부를 수리했어요”
아버지 인산仁山은 1992년에 84세를 일기로 세상과의 인연을 접고 세상을 떠나 선계仙界로 갔으나 그가 정립하여 인류에 전한 ‘참의료’의 진리와 그 진리에 근거한 지혜롭고 현명한 의방醫方과 약화제藥和劑는 《신약神藥》 《신약본초神藥本草》라는 불멸의 저서를 통해 세상에 전해져 활인구세活人救世의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1543년, 천동설天動說의 오류를 밝히고 스스로 정립한 지동설地動說을 통해 천문학의 진리를 밝힌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서가 세상 과학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처럼 인산의 저서 《신약》은 인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법칙과 생명 원리에 근거한 양생 의료 이론’을 정립해 고금동서에 전무후무한 새로운 의학 이론인 ‘양생설養生說’을 제시하여 ‘투병설鬪病說’에 근거한 상충상극相衝相剋의 세상 의료의 치료 한계와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참의료의 큰길’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인산 참의료 믿고 기적을 연출하는 생명들
그래서 ‘인산의학’은 의학을 전공한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세상 모든 의료가 완치 불가능하다는 암·난치병·괴질들을 쉽고 간단한 인산의 방약方藥을 활용하여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참의료의 큰길’을 제시함으로써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그 의방에 기대어 자신의 병고病苦를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적奇跡을 연출하고 있다.
‘기적奇跡’이라는 말 이외에 그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숱한 ‘구료救療의 신화’를 모두 열거하자면 천일千日 밤낮이 아니라 만일萬日 밤낮을 이야기해도 다하기 어려운 만큼 그중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지니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추려서 각종 암이나 난치병, 괴질로 신음하는 병자病者와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 될 이정표로 삼을 수 있도록 가감첨삭 없이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인산 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흐른 뒤에 그 의방을 배우고 실천하여 스스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뒤 그 의방을 실천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구체적 방안을 전해주어 인산 의방을 제대로 실천하여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인도한 사례이다. 이 사례는 지난 2013년에 있었던 일로 당시 ㅇㅇ 신문사 기자의 인터뷰 내용이고 그 뒤 《나는 죽염이 달다》라는 체험 사례집에 그대로 수록된 내용임을 밝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괴롭히던 질병들, 이젠 자유의 몸
부산에 사는 오(53)씨는 평생 온몸이 안 아파본 곳이 없다. 말 그대로 그녀의 몸 자체가 종합병원이었다. 대충 잡아도 그동안 앓았던 병을 한 15개쯤 꼽는다. 병고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한 건수만 7차례나 된다. 오씨는 인산의학을 만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올all수리’했다고 한다. 4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어왔던 온갖 처방 약은 모두 끊었다. 지금은 설악산에서 석 달째 뜸을 뜨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마치 새털같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그동안 오씨가 겪은
가시밭길과 인산의학을 만나 체험한 극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무용을 좋아했던 학생에게 닥친 불행
오씨는 어릴 때부터 무용을 좋아했다. 네 살 때부터 전통무용을 배워서 평생을 춤과 함께 살았다. 대학 때 전공도 무용이었고, 졸업하고 난 뒤 평생 전통무용학원을 경영했다. 40년 넘게 춤과 함께한 인생이었는데, 건강 악화로 더는 운영할 수
없어 지난 2008년 문을 닫았다.
“12세 때 친구와 교실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떠밀려 넘어졌어요. 운이 없었는지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부딪쳤어요. 그다음 날 일어나 보니 손발이 움직이지 않았고, 이후 석 달 동안 병원에서 누워 지냈어요. 온몸 뼈마디 곳곳이 다 아팠지만, 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조차 몰랐어요. 퇴원은 했지만, 손발이 저리고 아팠고 여름에는 더위를 못 견뎠고, 겨울에는 추위를 못 견뎠어요. 그 고통을 잠시라도 잊는 방법이 춤이었죠. 춤을 추고 있는 동안만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이었어요.”
건강하던 오씨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사소한 데서 비롯됐지만, 건강은 순식간에 무너져 평생 병원 신세를 지며 살게 된다. 오씨는 그 이후 신경쇠약 증세와 공황장애를 앓았다.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뿐만 아니라 길을 가는 도중에도 많은 사람 속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길이 갑자기 올라와 나를 덮치거나, 누군가 칼을 들고 덤벼들 것 같은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 살았어요.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벽이 나를 향해 죄어오는 듯한 불안감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었어요. 약에 의존해 40년을 수면제나 신경안정제에 의지하며 생활을 했어요.”
공황장애 극심한 고통… 거듭되는 자살 기도
오씨는, 공황장애는 정말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심각한 병이라고 했다. 사람이 두렵고 세상이 무서운 병이라고.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공황장애 같은 고질병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살았는데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모를 거라고 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에 팔목 동맥을 끊기도 했고, 약으로 죽으려고 신경안정제를 다량 먹기도 했어요. 세 번이나 약을 무더기로 먹었지만, 응급실에서 깨어나고 몸만 상할 대로 상하고 실패했어요.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4층에서 투신하기도 했고, 술을 먹은 뒤 부산 광안리 근처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어요. 4층에서 뛰어내렸을 때는 춤출 때 쓰던 헝겊에 걸려서 극적으로 살아났고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는 지나던 해양경찰에게 구조되어 살아났어요.”
보통 사람이 자살에 실패하면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산다고 하지만, 오씨는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면 ‘다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복어를 구해다가 통째 매운탕을 끓여 먹을 생각까지 했다고.
“자살하기로 마음먹으면 얼음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느껴지고, 기분 나쁜 죽음의 냄새가 나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나쁜 기운이 있어요.”
거듭된 병원 생활에 망가진 몸과 마음
오씨는 마음의 병만 심각하게 앓은 게 아니었다. 마음이 망가지면서 몸도 함께 망가졌다. 그동안 수술한 횟수만 10여 차례에 이른다.
유방에 혹이 생겨 유방 제거 수술을 했다. 그냥 놔두면 암이 된다는 의사의 말에 따랐다. 자궁에도 혹이 생겨 두 번의 수술로 자궁을 절제했다. 손등에도 혹이 생겼다. 그냥 놔두면 손목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수술을 했다.
허리디스크 수술도 두 번을 받았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안구에도 혹이 생겨서 눈에 가시가 박힌 듯 아렸고, 봄철이면 기침, 재채기에 피부는 얼룩덜룩해질 정도로 알레르기가 심했다.
2004년 얼굴과 왼쪽 수족에 마비가 닥쳐 한의원에 1년을 다닌 적도 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밥을 잘 먹지도 못했고, 통풍에 관절염에다 손발이 여름·겨울 할 것 없이 저리고 차가웠다.
“지난해에는 목디스크가 왔어요. 손끝까지 아팠죠.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녔지만 모두 다 ‘경추신경 협착증’이라며 수술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두 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요. 공황장애와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는 목 보호대를 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수술은 어떻게든 받겠지만 목 보호대를 하면 숨이 막혀 미쳐버릴 것 같아 수술받을 자신이 없었어요. 목디스크 수술 날짜를 받았지만, 이틀 앞두고 설악산으로 와버렸어요.”
백회뜸, 숨통이 터진 듯 달라지기 시작하다
수술을 앞두고 한 지인의 반강제적 권유로 ‘인산의학’을 실천하는 설악산자연학교 건강캠프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인산의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캠프 때 김윤세 회장, 김종호 이사, 우성숙 교장의 진솔한 강의를 통해 소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오씨는 교육을 받기 전에는 지인을 통해 ‘인산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소금’ 먹고 허리 병이 낫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앞섰고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인산의학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어요. 올 때도 내 힘으로 걷지 못해 부축을 받아서 겨우 왔고, 앉아 있을 힘도 없어 소파에 누워서 강의를 들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밥을 먹고 뜸을 뜨면서 ‘마치 공기 없는 곳에 살다가 숨통이 트인 것’ 같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오씨는 설악산자연학교 캠프가 끝났음에도 그대로 남아서 바로 백회百會부터 뜸을 뜨기 시작했다. 죽염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매일 마늘과 죽염을 먹으면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뜸에 몰두했다.
“백회에 뜸장을 올리니까 쇠로 만든 군함이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척추가 무너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어요. 얼굴에 지진이 일어나듯,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 얼굴 살이 출렁거리는 것을 느꼈어요. 뜸을 뜨면서 마비된 손가락 세
개가 뜸 뜬 지 불과 하루 만에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험을 했어요. 백회에 300장을 뜨고 나서는 목에 오방五方 뜸을 뜨기 시작했어요.
그다음에는 가슴 한복판에 있는 전중혈에 뜸을 뜨기 시작했고요. 몸이 극도로 예민해져 개미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어요.”
진작 인산의학 알았다면 무모한 짓 안 했을 것
오씨는 뜸을 뜨면서 마늘과 죽염을 계속 먹었다. 죽염은 하루에 밥숟가락으로 다섯에서 일곱 숟가락을 고봉으로 퍼서 먹었다. 한 달에 대략 1.5〜2kg씩. 마늘은 하루 세번 매끼 일곱 통씩 먹었다.
먹은 뒤 보름까지는 방귀 냄새의 고약함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했고 설사도 많이 했고 이때마다 참외씨 같은 것이 잔뜩 빠져나갔다. 불과 일주일 만에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보고 느낄 정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경과 처방 약은 12세 때부터 먹기 시작해 설악산에 오는 날까지 먹었어요. 살면서 40년간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잤는데, 백회에 뜸을 뜨고 사흘 만에 약에 의존하지 않고 편한 잠을 자게 됐어요.
평생 어디를 가든 항상 가방 속에 한 달분 약을 챙겨 다녔는데… 어떤 날은 백회 뜸을 뜨는 도중에 잠이 들기도 했어요.
‘인산의학’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이제야 모든 생사生死의 권리는 내가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일과는 밥 먹고 뜸 뜨고, 밥 먹고 뜸 뜨고, 새벽 2〜3시까지 뜸을 뜨는 날도 많아요.”
내 몸의 주인은 병원이 아니라 바로 나
오씨가 설악산자연학교에서 ‘인산의학’을 체험하면서 달라진 것은 하나 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석 달을 지내는 동안 앓고 있던 병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
“인산의학을 알고 나서 병이 들면 자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몸에 칼질한 무식함에 부끄러웠어요. 만일 내가 부산에 그대로 있었다면 이렇게 몸이 달라지지 못했을 거예요. 도시를 떠나 평소 생활습관을 바꿔서 가능했다고 봐요.”
전중 뜸을 뜨고 나서는 발등이 가려웠는데 부스럼이 생기더니 새살이 나왔고, 손톱·발톱을 깎을 때 늘 부스러졌는데 쑥뜸 이후 새 손톱과 발톱이 나오기 시작했다. 말도 더듬거리고 어눌했는데 전화 받는 상대가 놀랄 정도로 발음도 정확해졌다.
머리카락 끝부분까지 몸 곳곳에서 노폐물이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악취가 심했던 소변도 냄새 없고 맑은 소변으로 변했다고 한다. 평소 알레르기가 심해 봄철이 무척이나 싫었는데 올해는 알레르기도 없이 지나고 있다고 한다. 또 항상 소화가 안 돼 조금씩밖에 먹지 못했는데 양껏 식사도 하고 맵고 짠 음식도 즐긴다.
그동안 맵고 짠 음식은 전혀 먹지 못했다고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신경이 예민해져 김치를 씻어 먹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김치를 그냥 먹는 것은 물론이고 청양고추를 풀어 국을 먹을 정도로 식성이 달라졌다.
또한 죽염을 먹고 나서는 칫솔질을 안 해도 입속에 찜찜한 느낌이 들지 않았으며, 풍치가 심했는데 죽염을 먹고 그 증상이 다 없어졌고 사물이 다중으로 겹쳐 보였던 눈도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내 몸을 고친 세 가지 보물 ‘뜸·죽염·마늘’
“처음에는 설악산자연학교 캠프에 참가해 딱 2박 3일만 있다가 바로 부산으로 돌아가려 했어요. 우성숙 교장 선생과 상담을 통해 계속 남아서 백회에 뜸을 뜨고 몸이 변하자 이곳에서 내 몸을 완전하게 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계절은 걸려야 내 몸과 마음의 병을 완전하게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딱 1년간 있기로 했어요.”
오씨는 석 달 동안 약독藥毒에 절어 딱딱했던 배도 들어가고 몸무게도 5kg 줄었다. 백회를 뜨고 그다음에는 전중, 중완, 단전 순으로 뜸을 뜨고 있다. 뜸과 죽염과 마늘 이 세 가지가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일어날 때마다 몸이 달라지는 느낌이 신기할 따름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져요.
내 몸이 젊은 20대로 돌아간다면 이 느낌일 것 같아요. 공황장애 때문에 여러 번 죽으려 했는데 지금은 공황장애는 병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작 ‘인산의학’을 알았다면 병원에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을….”
원래 내 몸 그대로 돌려놓을 것이다!
“죽음만이 답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몸이 좋아지고 나서 할 일이 너무 많아졌어요. 이제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체계가 잡혔어요. 죽염 먹고 마늘 먹고 봄가을로 뜸 뜨고 많은 사람에게 ‘인산의학’을 알리는 것이죠.
이곳 설악산자연학교는 저에게 은혜의 장소입니다.”
오씨는 설악산자연학교에서 ‘오 반장’ 또는 ‘군기반장’으로 불린다.
“자! 죽염 먹을 시간입니다. 모이세요! 원샷! 하면서 함께 죽염을 퍼 먹기도 하고 귀한 ‘마늘님’ 먹으면서 누가 인상을 찌푸리고 먹느냐면서 호통을 치기도 해요. 모두 함께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요. 매일 눈뜰 때마다 경이롭고 신기해요. 그동안 내 몸을 잘못 사용한 데 대한 대가라 생각하고 이제는 참회의 마음으로 ‘원래의 몸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마음으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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