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

미국에 모스크바 18개, 1854년 미국 페리제독이 갔던 요코하마는 중미였다

예덕나무 2025. 1. 17. 11:09

현재 러시아에 있는 모스크바, 모스코우, 페테스부르크, 쌍트 페테스부르크

지명이 북미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찾아보고, 
결국 아라사 러시아는 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1854년 미국 페리제독이 몰았던 흑선이 내항을 했던 

흑선 미시시피호의 행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결국 증기선 미시시피호는 대양을 건널 수 없는 작은 배였고, 

3만km가 넘는 열도일본의 요코하마에는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요코하마는 열도일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중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1. 미국에 모스코바는 18개나 있다.
여기 아메리카에 제가 빨간 점을 이렇게 착 찍었어요. 


이게 뭘까요? 
현재 모스크바는 여기 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여기 있고, 유럽에 모스크바가 있는데 엄청나게 멀어요. 
지금도 여기 가기가 매우 어렵죠. 

그런데 북미에 모스코바는 이렇게 많습니다.
오하이오주의 모스크바, 
캔사스주의 모스크바, 
메인주, 테네시주, 아칸소주, 알라바마, 인디아나, 아이오와, 메릴랜드,
미네소타, 미시시피, 텍사스, 버먼트, 웨스트 버지니아, 위스콘신, 미주리,
미시간, 미네소타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웬 모스크바가 이렇게 많이 있습니까? 
진짜는 여기 하나밖에 없는데... 

그 다음에 또 여기 보면 요런 것들이 보입니다. 요건 또 뭘까요? 
이건 페테스브루크 


이것은 
인디에나 
미시간
웨스트버지니아 
버지니아 
알라바마 
이렇게 있습니다.

그리고 쌍트 페테스부르크가 또 있습니다.


그다음에 현재 유럽 러시아에 있는 쌍트 페테스 부르크가

요렇게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냐 플로리다에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가는 입구가 상테 페테스부르크가 있습니다. 

 


근데 1868년 페테스 부르그 선언이 있어요. 선언 이게 뭐냐?


2009년에 현대 무력충돌법의 규약적 특성과 

실효성의 문제라는 논문이 있어요.


이 논문이 있는데, 1868년 이때 페테스부르크 선언을 했습니다.

<페테스부르크 선언 주요내용>
전쟁중의 국가가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유일히 정당한 목적은 
적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400g 이하의 작열탄 및 소이탄을 금지한다.


근데 이선언을 페테스부르크에서 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선언을 북미 페테스브루크에서 했을까? 

아니면 유럽 페테스부르크에서 했을까? 
1868년 페테스 부르크의 선언 그럼 이때가 언제냐?

1861년부터 1865년이 끝났던 남북전쟁 직후입니다.
그리고 1868년에 메이지 유신이 성사가 되죠.


2. 1854년 미국 페리제독이 간 요코하마는 열도일본이 아닌 아메리카 중미에 있었다.

한편 그 이전 1853년에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에 도착합니다. 
근데 이 사람이 요렇게 갔대요. 
여기서 이렇게 해서 여기서 요렇게 해서 갔을까요? 


아니면 요렇게 왔을까요?



이것을 일컬어 페리 원정 하기도 하고, 흑선내항 하기도 합니다.


이게 1854년 3월 8일 요코하마에 도착을 했어요.

그 사진이 있습니다. 
이렇게 위키백과에 들어가면 이렇게 딱 나와 있어요.


근데 여러분 여기 잘 보시면 도착 도열이 돼있죠. 
이 모습을 키워 볼게요.


복장이 이게 1854년에 복장입니다. 
요게 뭔가 이상하죠. 
칼러로 그릴 수는 있다고 해도 지금 영국의 복장과 너무 비슷하죠? 

그 다음에 여기도 또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이렇게 도열 있고 여기 또 이렇게 좀 올라오고 있단 말이에요. 


그 다음 여기 배들이 도착 있어요. 이 배가 원래 미시시피호 거든요.


그리고 요게 사스케해나호 증기외륜 프리깃입니다.
지금이 사이트에 가면 요 배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그 다음에 범주 슬루프 새라토가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런 배들이 요코하마에 왔다 그겁니다. 
이런 배들은 대양을 건널 수 없는 증기선입니다.
석탄을 때서 증기를 만들다 보니 석탄의 소모가 엄청납니다.
배에 석탄을 싯고 가려면 다른 것들을 싯지 못하는 단점이 있고, 

배 중량의 70%를 석탄으로 채워야 됩니다.

다시말해 페리제독의 미시시피호는 대양을 건널 수 없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요코하마는 아메리카대륙의 중미에 있었다는 것이죠.


1854년 3월 8일 요코하마에 내항한 흑선 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냥 세어 봤더니 아홉 척이 와 있어요.


아홉 척이 와 있고 여기는 수많은 조그만 배들이 엄청나게 와 있습니다.

조그만 배가 대양을 건너 열도일본 요코하마에 올수 있었겠습니까?


미시시피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위키백과에 가면 미시시피호는 1841년에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랬더니 패들 프리깃, 이거 패들 프리깃 배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미시시피호는 1세대 증기 전함은 패들 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양쪽이 중앙에 장착된 외륜을 사용했습니다. 
일륜 증기선은 장착할 수 있는 무장이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미시시피호(패들 프리깃 배)는 무게가 심각하게 제한돼 있었다. 

또 외륜증기선은 속도가 늦었다.
외륜 호위함의 무장은 돚 전용 호위함과 심하게 비교되는데 무기를 많이 싯지 못한다. 


석영달의 ‘19세기 증기선의 도과 영국 해군의 변화’논문을 보면 
배가 발전하는 방향은 범선 → 범선+증기선 → 증기선 으로 갔는데,
 
당시에 초기 증기선은 단거리 항행을 해야 했고, 

석탄 보급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에 연안 하천에서 운영했습니다.
즉 멀리 못간다는 것이죠.

그리고 반드시 석탄 공급소(콜링 스테이션)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초기증기선(패들 프리깃)은 아편전쟁, 멕시코-미국전쟁, 

크림전쟁, 미국 남북전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아편 전쟁이 1856년~1860년, 아까 피츠버그 선언 때문에 

이걸 보고 가는 거예요.
영국이 인도에 있는 싸구리 아편을 가져와서

여기서 팔다가 전쟁을 했다 그랬잖아요.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 1846년~1848년 이건 또 여기서 했어요. 
크림 전쟁은 또 여기서 했어요. 
그다음에 또 남북 전쟁 여기서 했어요. 



당시에 초기 증기선들은 다 단거리 항행이었고, 

석탄도 보급해야 되는데 
이렇게 막 여기 저기 전세계를 다니면서 

항해를 할 수 있는가?  없다.

결과적으로 당시 남북전쟁, 멕시코 미국전쟁, 

아편전쟁 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1868년 페테스 부르크의 선언 이것은 남북전쟁 직후

메이저유신이 함께 하던 그때 이 페테스 브루크,

쌍트 페테스부르크, 진짜 쌍트 페테스부루크가 어디일까요?

그리고 이 러시아 모스크바는 북미에 많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또 하나의 지명이 있습니다. 
포트아서 이렇게 두 개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여순의 포트 아서는 여기죠. 



그래서 모스크바, 쌍트 페테스부르크, 포트아서를 다 표시를 해보니 이렇게 됩니다. 



미시시피호는 패들 프리깃, 이 배는 미국 해군의 첫 번째 배입니다.
요게 이제 무게는 3,272톤 그러면 75% 석탄 2,454톤으로 대서양을 건너간다.
그러면 2,454t의 석탄을 실어야 됩니다. 



근데 더 멀리 간다 그러면 석탄보급소배(콜링 스테이션)가 있어야 됩니다. 
당시 석탄보급배가 없었습니다.


이 페리제독이 1854년 3월 8일 요코하마에 왔어요.
이 미시시피호는 1849년에 1851년 사이에 지중해를 갔답니다. 


우리 분명히 초기 증기배(미시시피호)단거리 항행,

석탄 보급이 가능해야 되고, 연안 하천용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여기 플로리다에 카스피해가 있었다. 
그럼 여기가 지중해라고 한다면

멕시코만으로 간 거 아니냐라고 보는 것이죠.


다시 또 보면 1855년 8월 28일 

미시시피호는 오스만 제국의 스미르나에서 좌초되었다. 

여기가 이제 스미르나 여기 있어요. 



여기 근데 지금 이름이 이즈미르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좌초가 됐다는 거예요. 

지중해에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는 

고대 그리스에서 좌초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국 배가 이걸 뭐 건지려고 그러는데 

못건졌다가 다시 뭐가 떠올랐답니다. 

그런데 여기 북미에 스미르나가 있잖아요. 
스미르나는 애틀란타주에 있습니다.


이 함대는 1852년 11월 24일 햄프턴 로드를 통과해

마데이라 희망봉 홍콩 상하이를 향해 1853년 5월 4일 도달했는 것인데,

도저히 당시 증기배로는 갈수 없는 거리다.


근데 돌아올 때는 13개월 만에 또 돌아왔대 어디서 뭐 하다 온 걸까요? 


그 당시 배들은 저렇게 장기간 체류를 할 수 없는 선박입니다.
이것을 연구하신 분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증기선들이 위키에서도 '싣고 다니는 

기계와 석탄의 무게는 어쩌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인지 모른다'

해놓고 이렇게 소설을 쓰는 겁니다. 


소설을 맞춰야 되니까 조작해서 써놓은 거예요. 


3. 오하이오주의 모스코바에 대한 기록


오하이오주에 모스코바가 있는데 위키 자료에 가면 이렇게 나와요.

"신시내티 동남쪽 오하이오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모토가 바로 a peaceful spot on the river

에 있는 평화스러운 장소다"

그러면서 여기에 이렇게 영어로 써 있는데 이게 이렇게 돼 있어요.

 

그 파란 부분을 해석을 해 보면 요렇게 됩니다.

 

1816년에 발견된 마을인데 이름이 모스코바 역사적으로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보로디노 전투의 참가 노병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 지명으로 만들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폴레온과 함께 보로디노 전투에 참가했던 

노병이 여기다가 이름을 이렇게 졌대요.

 

보로디노 지명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나폴레온 하고 러시아 군대하고 싸웠는데 그래서 그 이름을 

여기다 갖다 주 놨다 그 말이에요.

그 아주 동서를 막 넘나 들어요

 

 

이 사람들은 러시아라는 이름을 

지금 현재 저들의 기록에 의하면 1862년 5월 7일부터
1721년 제의했던 이 표트르 1세가

러시아라는 이름을 만들었대요.

 

우리 역사에는 노서아 아라사 뭐 나선 이렇게 나타나요.

 

노서아는 1860년에 나타납니다.

 

저기서 아묵리가사국은 아미리가사국으로 읽어요.

 

자 아라사 요건 또 고종 1864년에 아사고 나옵니다.

 

나선 이거는 효종때 1654년에 나와요.

 

러시아라는 이름은 나중에 생겼지만,

이제 우리 역사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아 여긴 러시아야라고 하고 있는데,

이게 이건지 맞는지 아닌지는 정확하진 않아요.

 

근데 우리 역사에서는 

원래 여기가 뭐냐 하면 남만을 왜, 북적은 야인이라 했습니다.

 

북적 야인 여기서 우리 세종께서 외인은 조선의 신민이었다.
뭐 어쩌고 저쩌고 한 여기 영상 있잖아요 

 

기록에 보면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으로서

내부 하는 자가 심이 많은데 모두 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

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아라사 노서아 이것이

우리 역사에서는 이렇게 나타나는 겁니다.

원래 그러다가 나중에 이게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4. 아메리카의 러시아회사가 현재 러시아가 되었다

 

그러니까 아까 우리가
1868년 페테스 부르크의 선언이 있었던 그 무렵,

(남북 전쟁이 막 시작되던 그 무렵),

막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동서양이 뒤섞이는 그 무렵,
그때 아메리카에는 아메리카 러시아 회사가 있습니다.

 

이 아메리카 러시아 회사가 지금의 러시아가 됐다라는

학설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튜버 부자요술램프 '1854년 미국의 페리제독은 현재 요코하마를 올 수가 없다. 미국에는 모스크바가 18곳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