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삶 영계

순수 의식

예덕나무 2024. 6. 4. 16:31

 

순수의식이란?

선정상태에서 생성되는 마음만이 카르마의 잠재력을 남기지 않는다.

마음의 흐름은 외부로 향할 수도 있고 내면으로 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두방향으로 흐르지는 못한다. 

아트만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 에고의식에서 벗어난다.
아트만을 위한 임무를 완수한 구나들은 만물의 자궁인 프라크리티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이것이 해탈이다.

여기에 이르면 아트만의 본성인 순수의식만 빛난다.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이 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 자아인 순수의식과 하나가 된다. 
우리가 그렇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과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은 바다에 이르면 하나가 된다.
그러면 그들은 나는 이 강이고 너는 저 강이라는 식의 개체의식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 순수의식 속으로 흡수되면 그들의 개체의식은 사라진다.
개체의식이 되었을 때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이유는
개체의식이 없는 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소금이 물에 녹았다고 해서 없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또 소금물을 쏟아 버렸다고 해서 소금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닌 것처럼,
네 속에 있는 참자아 아트만도 마찬가지란다.
네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지 네가 알지 못할 뿐이지 참 자아 아트만은 늘 그대로 존재하지.
늘 그대로 존재하는 참자아가 곧 너의 본질이란다”

순수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수의식은 모든 존재의 본질이다.
그는 진리이며 만물의 참 자아이다.

선생님 “저는 지금 마음이 몹시 혼란하고 괴롭습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사나트쿠라마가 말했다.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가 배운 것은 실재가 아니라 이름일 뿐이다. 

참자아에 정신을 집중하여 명상함으로서 참 자아를 깨닫고
모든 것에서 참자아를 보며 참자아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자유 속에서 살게 된다.
그가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그의 편안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무한한 참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유한한 것들의 속박 속에서 고통당하는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태초에는 오직 순수의식만 있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순수의식에서 우주가 태어났다.

그리고 순수의식은 창조작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것 속으로 분화되어 침투해 들어갔다.
마치 햇살이 물에 비치듯이 그렇게 들어갔다.
순수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수의식은 존재의 본질이다.
그는 진리이며 만물의 참 자아이다. 

참자아를 깨달은 사람은 죽음과 슬픔을 맛보지 않는다.
참자아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 속에서 모든 것을 보며 모든 것에서 자신을 본다.
그는 하나가 된다.
그는 셋이 되기도 하고, 다섯이 되기도 하고, 일곱이 되기도 하고, 아홉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백하나가 되기도 한다.
또는 천의 스무배가 되기도 한다.
정신의 음식이 깨끗하며 마음이 정화된다.
마음이 정화되면 기억이 투명해지고,

기억이 투명해지면 가슴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매듭이 풀린다.
 
이렇게 사나트쿠마라의 가르침을 받은 나라다는 모든 속박에서 풀려나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참자아의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출처: 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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