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

훈족의 이동, 유럽으로 이동한 훈족이 몽골인 코리안이고, 이들이 현재의 불가리아였다.

예덕나무 2024. 6. 10. 14:55

 

 

훈족의 이동, 유럽으로 이동한 훈족이 몽골인 코리안이고, 이들이 현재의 불가리아였다.

중앙 아시아 중원에서 북위가 제왕의 성, 관중을 장악하고 황제가 되었는데 천지가 진동하는 이동이 시작된다. 이들이 바로 훈족 즉 한족(韓族, 漢族)의 이동이다. 
한韓은 관중의 청주이고 한漢은 관중의 한양이다.
북위 태조 도무제 탁발규인 광개토대왕이 계셨던 곳이 이 한(韓, 漢) 지역인 관중이다. 

(1) 유럽역사 게르만의 이동 
  ‘원 거주지는 알 수 없으나, 발트해 연안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거주하면서 일찍부터 남하하여 로마의 국경선인 라인강으로 이동하여 다뉴브강 북쪽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위키백과 참조) 

  단도직입적으로 게르만(german)은 게르 가리 고리의 고려를 뜻하는 용어로서 현 독일의 국명이 게르마니라는 뜻이다. 
  물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영어식 발음인 저머니로 발음한다. 
  
  참으로 우스운 사실은 소시적 독일을 도이칠란트라고 했으며, 2차대전시 독일이 네덜란드와 적국으로 네덜란드를 맹폭격했다고 하는데 네덜란드는 도이치 더치 페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즉 독일과 네덜란드가 한 나라라는 얘기이다. 그러면 2차 세계 대전의 내용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이들 유럽 역사의 게르만의 이동 조작은 중앙아시아 중원으로부터의 흉노의 이동과 이후 한족의 아리안 이동을 은폐하기 위한 물타기로 역사를 혼란스럽게 휘저으며, 실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수많은 부비트랩을 깔아놓은 함정이다. 
  
  이 유럽의 역사의 게르만의 이동이 한족의 이동이다.
  게르가 바로 코리인 고려이기 때문이다. 
  흉노가 켈트라고 했다.


(2) 중원의 위대한 황제 아틸라

  1) 한족의 정체
    한족(Huns)은 서양사에 등장한 최초의 투르크계 민족이다.
    흉노족과 훈족 또는 한족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흉노의 匈은 훈(Hun)을 중국어 음로 부른 명칭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근거는 없다. 

    그들의 지도자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서진은 첫번째로 기록된 기마민족의 대규모 이동으로, 그 당시 우월한 기동성과 발달한 활을 무기로 삼아 유럽으로 서서히 진격했다. 
    훈족은 5세기 중엽에 가장 세력을 떨쳐 아틸라의 지휘 아래 서쪽은 라인강에서 적은 카스피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일견에는 훈족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현재 훈족의 후계 민족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헝가리와 터키, 몽골은 이들을 자기 민족의 역사라고 가르친다. 

    역사서에 등장하지만 현재에는 실제 실재하지 않는 종족 및 민족의 개념은 역사 조작이며 과거의 역사서에도 등장하며 현재에도 존재하는 세력의 개념이 진실된 역사이다. 

    훈족, 한족은 투르크계 민족이라고 한다. 
    그러면 현재의 터키와 또는 중앙아시아의 트르크메니스탄 중 쿠르크의 본 실체가 있을까? 있다.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이다.

    헝가리는 훈족 한족이 맞다. 그리고 몽골도 맞다. 
    단 역사 속의 몽골이지 현재의 몽골은 그 훈족 이동의 훈족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의 터키는 한족이 아니며, 현재의 이스탄불이 훈족, 한 제국의 수도였다.

    한족의 지도자 아틸라는 누구일까?
    한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바로 북위 태조 도무제 탁발규인 광계토대왕이다. 
 
  2) 한족의 이동 이유
    중아아시아 중원에서 한무제 유체에게 패했던 한, 위, 조, 연, 제, 초의 제국 연합인 흉노가 천하의 중심 천조의 허가를 받고 유럽으로 이동해 새로이 나라를 건국한 것이 켈트인 갈리아이다. 
    갈리, 가리와 고려는 동일한 말이다.

    그런데 이때 유럽의 서코리아인 서로마 제국에서 이들 흉노를 자기들 세력권의 안에 두기 위해 롬 전투와 분란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흉노가 등장했던 시기의 전후가 바로 로마인 이야기의 주 무대이다. 

    이렇게 코리아의 한축인 유럽의 서로마에서 흉노와 원주민인 슬라브, 희랍과의 분란이 일자, 화북을 통일한 황제 탁발규인 광개토대왕이 천주의 승인하에 분란이 일고 있는 유럽 지역을 평정하고자 출정하게 되는 것이다. 

    현지의 조작된 역사는 이들 중앙아시아 한족의 이동을 숨기기 위해 유럽사에서 스칸디나비아로부터 게르만의 이동이 있었다고 조작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날개 달린 투구 바이킹을 믿는가? 

(3) 훈족의 정체 
  중앙아시아 중원은 위진남북조 시대로 천하가 평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천조의 승인을 받은 북위는 황제와 황제를 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세력들만 이동하고 이들 중원의 황제를 보필할 수 있는 대군단이 북해 전선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북해 북코리아 말갈 몽골이다. 중원과 북해의 능의 법을 받드는 세력들을 모두 대고려 말갈이 했으며, 이중 북해의 말갈 세력을 특히 몽골이라고 불렀던 것이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불가리아의 기원 
    불가리아의 역사는 4세기경 훈족과 함께 볼가강에서 등장한 불가르족에서 기원한다. 불가르족은 투르크계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6세기경 크림반도에 정착하였다.(위키백과 참조)

    불가리란 밝은 고려이다. 이 국명 자체가 우리말이다.
    불가리아의 수도는 소피아 그리고 한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대성당 이름이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불가리아와 이스탄불은 동일한 세력이었다. 

    불가리아의 역사는 4세기가 아닌 5세기 초 볼가강에서 등장한 불가르족 기원하는데 그들이 바로 훈족, 한족인(몽골 말갈) 이다.
    또한 불가르족은 투르크인 해탈인 스키타이 아리안 아틸라가 정착한 곳의 중심 세력으로 있다가 6세기경 크림반도로 확산한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래서 현지의 불가리아가 이스탄불과 밀접한 지역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우선 말갈 몽골의 기원은 환단고기에서 사세 오사구 단군께서 동생을 보내 몽골의 가한이 되었다고 하며, 몽골이 등장하는 지역이 중앙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중앙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진출시 또는 유럽에서 중앙아시아로 진출시 필히 몽골 지역을 통과해야만 하는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 북해의 몽골이 바로 아라사인 러시아 제국의 기초가 된다. 

    상기에서 헝가리가 훈족이 했다. 맞다 불가리아와 헝가리는 동일한 혈육이다. 
    단 헝가리는 10세기경 신성로마제국 이동의 주인공이었다. 

    또한 불가리아와 헝거리 유럽 진출 시기상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중원의 혼란기인 5호 16국과 5대 10국이 마무리된 직후에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며, 이동을 이끈 지도자가 단군왕검과 혈연관계인 북위 고구려와 고려로서 이들이 직계 혈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 이렇듯 중앙아시아로부터 이동한 켈트의 등장으로 로마제국과 분란이 일었던 유럽에 북해의 말갈인 몽골 군단과 함께 중원의 대황제가 등장했다. 

(4) 알랑족(알레마니족)
  알랑족, 아리랑족의 이동 행선로는 참으로 많은 비밀를 노출시켜 주었다. 이들이 바로 유럽사에 나오는 아틸라 광계토대왕 이동의 실제였던 것으로 알랑족이 철저히 숨겨졌던 한족의 이동이었다. 

  ‘알라니족 또는 알란족은 흑해 연안 북동쪽의 스텝지역에서 기원한 이란계 유목민족이다.

  기원 전후 고대 로마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들은 카스피해 연안의 카프카스에서 기원하여 서쪽으로 진출하였다고 하며, 금발에 키가 큰 민족이었다고 전한다.

  르네 그루쎄에 따르면, 카탈로니아라는 명칭은 고트와 알란을 합성한 것이다’

  카탈로니아 까탈은 카르 터인 보살의 터, 즉 밝은 터이며, 로니아란 이오니아 즉 중원의 요양遼陽이다. 관중 지역을 요遼라고 한다. 

 카탈로니아의 수도 바르셀로나란 바르는 밝음이며, 셀은 살인 보살, 밝살, 밝음이고 로나란 이오니아, 즉 중원의 요양遼陽이다. 

 유럽의 서고트, 동고트 제국의 고트란 천하의 중심 금성천주와 관중이 있었던 곳이 고양高陽으로 이곳을 높은 곳에서도 바라보이는 탁트인 밝은 곳으로 고 터라고 부른 것으로, 이것으로부터 이동한 코리안들의 의해 유럽의 국명이 된 것이다. 
 자 이제 위키백과에 등재된 알랑조 이동의 행선지를 살펴보자.

 상기의 지도는 아틸라의 훈 제국 또는 한 제국이며, 아틸라 사후 훈제국은 멸망한 것이 아닌 신성로마제국까지 계속 연결되었으며, 분할 통치되었다 것으로, 그 분할통치의 중심 수도가 아야 소피아 대성당에 있었던 이스탄불이었다. 

 중원의 세력인 흉노가 이동하기 전에 유럽은 서해와 북해의 세상이었으나, 중원의 세력 흉노가 이동하면서 이들 서해 세력과 정치, 국경 문제로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원의 황제께서 직접 유럽으로 진출하여 이들의 세력권에 대한 조정과 제국의 통합을 이끌었던 것으로 호5호 16국의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위진 남북조의 안정된 구도 하에 천조의 명을 받고 광계토대왕이신 북위 태조 도무제 탁발규께서 역사속의 몽골로 급히 파발을 보냈다.

  “나 중원의 황제 호태왕 천왕의 증명을 받고 분란이 일고 있는 로마제국, 즉 서아시아와 유럽및 북아프리카를 화합과 공전의 세상으로 교화하고자 출정하나니 몽골의 형제들은 만번의 준비를 갖추고 전선에서 대기해 주기 바란다.”

  이후 광계토대왕은 수백 기의 철 기갑만을 이끌고 또는 배편으로 친히 북해의 몽골로 입성해서 몽골 기사단의 영접을 받으니, 그곳이 역사 속 볼가강 하류의 마르코폴로가 지나간 불가라 사라이, 역사속 볼고그라드였던 것이다.
  볼고그라드란 볼고는 밝가, 밝은의 의미이며, 그라드란 고려 터이다.

 1) 볼가강 흐르는 중앙아시아에서 중원의 황제와 북해의 몽골 기사단이 드디어 출의 깃발을 올렸으니 그 첫번째 목표가 동로마제국인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상기 그림에서 보았듯이 한족은 그루지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즉 그곳에는 서해의 법왕청이 있는 신성불가침 지역이었다. 

   아나톨리 반도 즉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의 중심을 평정한 훈족의 아틸라는 다시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다음 행성인 발칸 반도로 진격했다. 

 2) 발칸반도에 로마 제국이 있었는가? 있었다. 바로 몰도바, 알바니아와 슬라브 국가들이다. 슬라브가 희랍이다.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

 3) 이후 헝가리평원 프랑스 북부의 켈트와 남부의 마르세유를 지나 서로마제국의 중심지 에스파니아로 진출했고, 이후 카르타고, 시실리, 사르데냐, 코르시카, 마요르카가 전 지중해를 장악했던 것이다. 

   상기의 그림에서 훈족이 피리의 산맥을 넘을 때 아라곤의 사라고사 지역을 관통해서 넘은 이유는 아라곤의 왼쪽이 북해의 법왕청인 바스크이며, 동쪽이 서해의 법왕청인 까딸루냐였던 것이다. 
   
   이들 보살부 법왕청 지역을 피해서 서로마제국의 왕부가 있는 아라곤과 발렌시아 지역으로 진출했던 것이다. 
   정말로 신기할 정도로 정교한 그림이다. 

   독자분들은 왜 안랑족 훈족이 그 높은 카프카스 산맥을 넘은 이유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로마제국은 이스탄불에 있었다고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로마와 그리스는 카프카스 산맥 밑의 아나톨리 반도에 있었다.
   그곳이 서해 신들의 고향이다.

   조작된 로마사인 글라디에이터에서 중원의 훈족이 미개한 종족으로 등장해서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실상은 이들 중원의 훈족은 최고의 기술과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스키타이 아리안으로서 로마와 공존했던 것이다.

 

   글라디에이터란 
   글라는 그라 그루의 고려이며, 디는 드 트 터인 땅이고, 
   에는 예 예레이며, 터는 땅이다.

(5) 서로마 제국 멸망의 진실
  게르만, 즉 훈족의 이동과 함께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하지만, 서로마는 멸망하지 않았다. 
  중원에서 이동한 한족과 융화되어 공동의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동방견문록에서는 로마제국인 대 아르메니아를 중원의 타타르의 하인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아리안X의 역사복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