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로부터의 메시지에 나오는 심령치료, 빙의치료, 제사, 안락사, 연명치료, 기도응답, 산속의 수도생활에 대해 고급령인 실버버치가 알려준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심령치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가니까 심령 치료라고 하면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영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능력으로 타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여러분이 대표적으로 아는 예수도 그랬고 제가 읽은 책 중에서는 다스칼로스 아나스타시아 인디언 관련 책 이라든지 기타 여러 책에서 영적인 능력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내용이 나온다.
심령 치료에 의해 기적적으로 병이 낫는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훌륭한 일이나 그 체험에 의해 그 사람의 영적 진리의 눈뜬 안 경지에까지 가지 않으면 그 치료는 실패로 끝난다.
실버 워치의 심령 치료관을 압축시킨다면 심령 치료는 혼의 개발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단순히 질병의 치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능력자가 심령치료를 통해서 환자를 고쳐 주었다면, 그 환자가 그것을 보고 ‘아 이런 영적인 것이 있구나, 신의 능력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고 영적인 진리의 눈뜨고 영성을 추구하게 되어야 그 심령 7호의 목적이 완수된 것이다.
그게 아니고 누가 기도해 줘서 내가 몸이 나았는데, 병원에 안가고 여기서 나았으니까 재수가 좋네 잘됐네 이러고 끝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에 비슷한 질병이 또 나타날 수가 있다.
그 심령 치료가 개인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영계에 있는 고급 영들의 협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심령 치료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러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치료가는 그러한 신의 계획의 일부를 맞추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 세상에 있으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모르고 왜 태어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모르는 채 우왕좌왕하는 자식들에게 영적 진리와 영원의 실제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그 치료 능력을 부여받고 태어난 것이다.
심령 치료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치료가의 몸에서 나오는 풍부한 자기의 일부를 환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영계의 치료가는 관여하지 않는다.
심령치료 두번째는 사이킥 필링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원격 치료, 난 주로 이 요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세번째는 순수 심령 치료로써 치료가의 정신 통일에 의해 파장을 높이고 동시에 환자가 그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갖추어졌을 때 일순간에 행해진다.
영성 분야에서도 이런 힐링과 관련된 분야들이 꽤 많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신의 분량을 지니고 있다.
영적 존재인 당신들은 영적 치유력 또 지니고 있어서 그 법칙을 이해하고 거기에 소통하면 질병은 자연히 낫는 것이다.
건강이란 육체와 정신과 영이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의 상태이다.
거기에 하나라도 조화를 어기면 거기에 질병이라는 결과가 생긴다.
□ 빙의치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책의 편저자 박금조씨가 자신의 스승이 어떤 사람의 치료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환자를 정좌시키고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환자의 질병 부위에 달라붙어 있는 인연령이 보인다고 한다.
인연령이라는 것은 빙의령을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카르마 때문에 와서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전생에 누구를 헤쳤다든지, 그 사람의 조상의 누구를 헤쳤다든지 그런 경우에 그 영이 그 사람 몸에 달라붙어서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빙의령이 붙어서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와 관련된 많은 책에 다 다와 있다.
필자도 정신을 집중하고 나의 몸을 훑어서 나의 몸에 있는 빙의령을 찾아낸 적이 있다.
내가 아프던 부위에 딱 달라 붙어 있었다.
빙의령하고 말이 통한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그건 퇴마사마다 좀 다르다.
귀신을 위협한다든지, 겁을 줘서 내쫓는 경우가 있다.
또 무서운 칼을 보여 준다든지, 내가 널 어떻게 하겠다는 위협을 한다든지 해서 빙의령을 쫓아 버리는 경우가 있다.
심령의 능력이 강한 사람의 경우에는 눈을 감고 뜨거운 불을 상상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귀신들의 세계의 아스트랄계에서는 실제적인 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퇴마사가 이불로 너를 태워 버리겠다라고 위협을 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내쫓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빙의령의 입장도 있다.
전생에 내가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해서 이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고 있는데, 왜 나를 나가라는 거냐 하고 반발을 많이 한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그런 내용이 나와 있는데 제령을 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고, 그 영까지 한꺼번에 정화가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내가 카르마가 있어서 그 카르마의 맞는 영이 와서 붙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자아 성찰을 하고 영성을 추구하고 나의 주파수를 높임으로써 내 몸에 붙어 있는 빙의령들까지 다 같이 정화를 시켜 줄 아는 것이다.
그런 것이 사람에게 보약을 주거나 예방 치료를 하는 것에 해당된다면, 지금 당장 아픈 사람에게는 그런 것보다는 응급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 경우에 응급치료로써 퇴마사들이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응급 치료가 그렇다.
이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급해서 한번 치료를 해줬는데 이 사람이 생활 습관이 좋지 않은데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서 또 다시 질병이 걸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사람의 잠재의식이 정화되지 않았는데, 퇴마사가 잠깐 귀신을 싹 떼어준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계속 잡념에 쌓여있고 좋지 않은 행동들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다시 또 빙의가 돼서 병이 걸린다는 것이다.
응급 치료도 가끔은 써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예방 치료가 필요하고 그 사람 스스로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학에서도 그렇고 이런 정신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실버 버치가 심령 치료를 통해서 치료를 해주어도 그 환자 스스로가 영적으로 깨어 나지 않으면 도루묵이 된다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런 뜻이다.
여기 앞에서도 나왔는데 카르마에 의해서 빙의가 돼서 질병을 앓고 있는데 억지로 제령한다면 그 카르마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문제가 나타난다.
언제든지 또는 그 자손에게서 또 문제가 일어난다든지 그렇다는 것이다.
카르마 해소 방법은 둘 중에 하나이다.
내가 삶에서 일어나는 질병, 빈곤 등 여러 문제들을 그대로 겪으면서 카르마를 쌩으로 갚든지, 나의 마음을 정화하고 동시에 나의 행동을 바르게 해서 선업을 계속 짓고 그런 삶을 통해서 카르마가 점점 줄어들 수 있다.
빙의령이 카르마를 따라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돌아가신 조상이라든지, 주변 사람 중에서 이 사람에게 애착이 있다든지, 사람을 너무 미워했다든지 등 어떤 이유로 와서 붙어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해서 며느리 몸에 가서 붙어있다든지, 할아버지가 손자가 너무 귀여워서 손자에게 붙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으로서는 내가 얘한테 붙으면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이해 못할 수 있다.
지상의 삶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집착이 있고, 영격이 좀 낮은 경우에 그런 일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카르마 때문이 아니고 집착이기 때문에 그 영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고 떠나라고 해야 한다.
영을 한사람 한사람 불러내어 사후 세계가 존재함을 가르쳐 주고 향상과 진화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지도령(수호령)이 말하는 것에 따르도록 말해 준다.
사람 몸에 붙어 있는 빙의령들도 지도령 내지의 수호령이 있기 때문에 그 수호령을 부르면 된다.
그리고 그 빙의령에게 가르쳐 줘야 된다.
당신이 여기 계속 있어봤자 좋을 일이 아니고 영계에 가서 계속 영적인 진화를 하는 것이 당신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
여기 이렇게 머물러 있으면 이 사람이 아프고 당신에게도 좋지 않은 카라마가 계속 쌓이게 된다.
이렇게 사랑의 마음으로 진지하게 설득을 해야 한다.
아주 악한 영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경우에는 빙의령이 그 말을 수긍하고 자신의 수호령을 따라서 떠나간다고 한다.
□ 조상공양이(제사가) 운세에 도움이 될까?
공양이라는 것은 귀신을 위해서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 것을 얘기한다.
실버 버치는 공양에 대해 질문 받고 그것을 해서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별로 효과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의 편저자가 의견을 말했다.
동서를 불문하고 공양하는 것을 좋아하는 영이 반드시 있다.
번 내에 세계에는 번 내 세계 나름의 방법과 수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죽고 나서 영혼 상태가 되는데 그 영혼 상태에서 아직 지상에서의 육체의 경험에 집착하고 있는 경우에는 음식을 먹는 쾌락, 성적인 쾌락, 이런 것을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영이 있다.
그런 영들의 경우에는 제사밥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앞에서도 나왔듯이 영이 점차 수준이 향상되어 가면 그런 먹는 것이나 육체적인 것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아이가 울면 달래주어야 하듯이 음식이 필요해서 욕망에 허덕이는 영이 있다면 음식을 대접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고차원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영성을 개발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지, 음식을 차려놓고 공양을 해서 조상이 복을 내려 주길 바라는 것은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다.
육체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육체가 받은 영향은 반드시 나에게도 미치고, 반대로 혼의 상태는 반드시 육체로도 표현이 된다.
양자를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된다. 말하자면 육체도 자아의 일부이다.
육체 없이는 자아의 표현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물질 육체가 우리의 영혼이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진동이 약간 낮추어진 형태라는 것이지 이것도 우리 자아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너무 추구하고 육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된다.
질병은 두 가지가 있다.
육체 자체에 문제가 있고, 영혼의 문제가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 운동하는지, 햇빛을 쒜는지, 맑은 공기를 마시는지, 규칙적으로 생활하는지 등 이런 육체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질병이 일어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고 과로한다든지, 남을 괴롭히고 카르마를 만들어서 그 업보를 받는다든지, 이런 정신적인 영적인 문제로 인해서도 질병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과 육체를 같이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안락사,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
안락사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고 판단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손을 쓰는 것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그러자 인간은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혼이 그 준비가 되었을 때 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감이 홍시가 되었을 때 떨어지는 것과 같다. 감이 완전히 익었을때 똑 떨어지듯이 죽음이라는 것도 어떤 인과에 의해서 그 죽음이 마땅히 와야 할 때 온다는 것이다.
어떤 이가 ‘사람이 죽을 때 고통을 받다가 죽는 것도 카르마를 갚는 것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해서 일찍 죽어 버리면 그 카르마를 다 못 갚는 것이다 그것을 갚고 가야 한다’는 관점이 있다.
그 내용이 여기 있는 실버 버치 의견하고 비슷한 것 같다.
사람이 죽을 때 편하게 죽는 것도 보기 좋은데 오랫동안 고통 받다가 죽는다면 고통을 받는 것도 카르마를 많이 갚는 일이고 또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서 더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카르마를 갚는 방법이다.
우리가 당하는 일, 우리가 겪고 있는데 막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한 일들은 마땅히 겪을 필요가 있어서 온다는 것이다.
질병이나 고통도 그 나름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그 반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죽고 싶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다.
산소호흡기랑 이것저것 다 붙여 높고 억지로 생명만 유지해 온 것이다.
그렇게 하면 좋은 것은 병원과 제약회사 관계자들이 돈을 버는 것이다.
인간은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이 얘기는 이 사람이 어차피 육체의 기능이 다 했다면 연명치료를 그만하고 보내주어 라라는 것이 영적인 가르침이다.
자기가 죽을 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 라는 문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한다.
보건소나 관련 기관을 찾아서 사전이 연명 치료 의향서를 내면 된다고 한다.
질병에는 혼에 원인이 있는 것과 순전히 육체의 것이 있다.
육체적인 경우는 직접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영적인 경우는 생명력을 이용한다.
즉 심령 치료를 한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그런 방법으로 영적인 원인에 의한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
치료가의 영격에도 한도가 있고 환자도 그렇기 때문이다.
즉 인연 카르마라는 것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카르마가 많다, 업장이 많다’ 그런 사람은 정말 좋은 치료사나 의사나 그런
사람들과 연결이 잘 안된다.
치료사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법이고, 육체적 치료나 영적인 치료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 치유 에너지가 물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제3의 눈이라든지 태양 신경총을 사용하는 수가 있다.
그곳이 영과 정신 육체의 3자가 합일하는 곳이다.
제3의 눈은 미간 뒤쪽으로 뇌의 중앙에 있는 송과체 부분 6번째 차크라(아즈나 차크라)를 의미한다.
태양 신경총은 세번째 차크라 마니푸라 차크라를 뜻한다.
태양 신경총은 배꼽에서 약간 위쪽에 있다.
세번째 여섯번째 차크라에서 영 혼 육이 만나기 때문에 그곳에서 영적인 능력으로 물질적인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치료를 하는 치료가가 있다면 영계에서의 영적인 의사가 치료에
파장을 보내 주어서 그 치료가를 통해서 변환이 되어서 환자를 치료한다고 한다.
영계의 의사는 어느 치료가에게나 원조의 손을 내밀어 주는가?
영격이 높은 것을 나타내는 증명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필요하다면 어느 곳이라도 간다.
이것이 고급 신령계의 철칙이다.
당신들도 절대로 환자를 거절해서는 안된다.
우리 인간들은 좀 이기적이라서 사람들을 봐 가면서 대하고 나한테 도움이 될까 안될까를 봐서 도움이 될 사람으로 친하게 지내고 이런 것이 있다.
영격이 올라가고 고급영일수록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즉시 달려가서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마치 불계에서 나오는 관세음보살이나 그런 내용들이 떠오른다.
□ 어떠한 기도가 응답을 받을까?
우리가 질병이 낫도록 기도를 할 때 그 치유 효과는 기도하는 사람의 영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대승정 혹은 대주교이기 때문에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영격이다. 또 나쁜 것은 집단으로 행하는 형식적인 기도이다. 무척 힘이 있는 듯 하지만 생각 밖으로 효과는 적다.
요컨대 신은 권위나 숫자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떼로 모여서 수백 수천 수만명이 기도를 하며, 신이 들어 주시겠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이기도 하더라도 정말 마음이 순수한 사람이, 영격이 높은 사람이 기도를 했을 때 거기에 맞는 신의 도움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기도란 본래 자기의 파장을 보통 이상으로 높이기 위한 영적 행위이다.
파장이 높아지면 그만큼 고급인 영과의 접촉이 생겨 필요한 원조가 주어진다.
어디까지나 필요한 원조뿐이다.
아무리 부탁해 봐도 필요 없는 것과 협조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
□ 조상이나 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 이유는?
‘로또 맞게 해주세요’ 이런거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조상님이 우리를 도와준 이런 개념이 많다. 그런데 왜 우리 조상님은 날 안도와주지 그런 생각이 들텐데 그것도 이 내용과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돌아보지 않고 망나니처럼 살고 있다면 그런 자손에게는 조상도 도움을 줄 수 없다.
그 이유는 영격의 차이가 있어서 진동수가 다르다 보니까 접속이 안되는 것이다.
영적인 에너지는 고차원의 에너지인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이런 저차원을 생각만 하고 있다면 이 사람의 영격이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지에 가지 못한 것이다.
조상이 도와준다든지 영계의 천사들, 고급 령들이 도와준다든지 이런 것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신의 노력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삶 속에서 마음을 닦아 나가고 영격을 고양시키고 기도를 통해서 진동수를 높이고 그랬을 때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영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영계의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인간과 접촉을 찾아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얼마만큼 접근할 수 있는지는 그 인간의 분위기, 진화 정도에 달려 있다.
영적인 것에 일체 반응하지 않는 인간은 접촉할 수 없다.
영계의 사람들이 지상에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도와주려고 하더라도 그게 자기 뜻대로 되는게 아니고 접속이 안된다는 것이다.
심령술을 몰라도 되고, 종교의 차이, 민족의 차이, 주의주장의 차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냉정하고 조용한 맑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것이 영계의 사랑하는 사람들, 조상령, 고급령으로부터 원조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공포, 고민, 걱정 등 이러한 생각이 가장 나쁘다.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에 쌓여 있으면 에너지가 너무 저차원으로 떨어지다 보니까 영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냉정하고 조용한 맑은 마음 이것은 우리 마음을 명상을 통해서 평온하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호흡이 어떤가, 우리의 뇌파가 어떤가, 이걸 보면 된다.
뇌파가 느리고 규칙적이고 안정되어 있는지, 아니면 뇌파가 아주 빠르고 불규칙한지이다. 호흡에 있어서도 편안하고 느린 복식 호흡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으로 불규칙한 호흡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의 자율 신경계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을 조절할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바로 호흡이다.
혹은 우리가 의지로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심호흡, 복식 호흡을 한다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 몸이 평온해지고 뇌파가 안정된다.
□ 산 속의 수도생활이 좋을까?
세속에서 떨어진 생활은 심령 의 발달에 적합하고 그 의미로는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세속에서 생활하면서 오히려 세속으로부터 초연한 생활 태도가 그것보다 훨씬 위다.
말하자면 영적 자각에 입각한 노력과 인내, 그리고 향상을 통해서 동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 자체는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개발된 능력을 남을 위해 활용하는 쪽이 더 중요하다.
<세정님의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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