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
임마누엘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앞에 섰다.
빌라도는 그에게 판결을 내리고 싶지 않아 그것을 그의 피를 요구하며 고함지르는 백성들에게 떠 넘겼다.
그는 살인자 두 명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다.
군중들이 악을 써대는 속에서, 그는 심하게 매질 당했다.
갈비뼈의 대부분이 부러졌고, 그는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힘조차 없어 시몬(Simon)이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골고다(Golgotha)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그는 십자가에 못박혔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허공에 세워졌다.
십자가에 사람을 못박는다는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저 묶는 것이 전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군중들과 로마 군인들은 고위 성직자들의 선동을 받아 광란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임마누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되었을 때, 심한 폭풍이 시작되어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 상태가
세 시간이 지속되었다.
폭풍이 끝날 무렵 그의 머리가 갑자기 앞으로 떨어지면서, 그는 혼수상태(coma)에 빠져들게 되었다.
군인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 있는지를 보기 위해 창으로 그의 넓적다리를 찔러 보았더니, 물과 섞인 피가 흘러나오자,
군인은 임마누엘의 생명이 빠져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임마누엘이 죽었다고 외쳤다.
군중들 속에 아리마대에서 온 요셉(Josheph of Arimathea)이 있었는데 그는 임마누엘의 추종자였다.
요셉은 그가 죽지 않았고 단지 많은 뼈들이 부러졌고 심하게 얻어맞았기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임마누엘은 영혼에 있어서는 강했지만, 이같은 육체의 훼손은 그에게조차도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임마누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묻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그는 그리고 인도에서 온 임마누엘의 친구들 몇이 거기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무덤으로 데리고 갔다.
그것은 비밀 출입구를 따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인도에서 온 임마누엘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무덤 입구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었던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출입할 수 있었다.
임마누엘의 건강이 다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데에는 사흘이 걸렸다.
그는 인도에서 온 친구들의 적절한 간호를 받았는데, 그들은 그를 되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특별한 기름들과
연고(salve)들을 가지고 왔었다.
임마누엘이 뒤에 나 있는 비밀 출입구를 통해 무덤을 빠져나간 뒤, 공중에서 커다랗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밝은 빛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 그의 플레이아데스인 아버지인 가브리엘이 나왔다.
그는 군인들을 잠재워 놓고, 출구를 막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옆으로 굴려, 임마누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사라진 것을 보도록 했다.
그들은 가브리엘로부터 지시를 받고 시내로 들어가 제자들에게 임마누엘이 회복되어 일어났음과 갈릴리로 가는
노상에서 그를 만나도록 하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말했다.
임마누엘은 제자들 앞에 두 번 더 나타났는데, 한 번은 그들이 '마지막 만찬(the Last Supper)'을 갖기 위해
며칠 전에 모였던 방에 있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갈릴리로 가는 길 위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자취를 감추어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시리아에 내려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다마색, 즉 다마스커스(Damascus)에서 삼 년간을 살았다.
임마누엘과 사울
그가 자신의 동생인 토마스(Thomas), 즉 도마와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이 이 때였다.
그의 동생은 그에게 사울(Saul)에게서 그의 추종자들이 당하고 있는 참혹한 일들을 전해 주었다.
임마누엘은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했다.
사울은 나중에 폴(Paul), 즉 바울로 알려지게 된 자이며 기독교의 형성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이다.
살아 남아서 신약을 만들게 되는 임마누엘의 가르침들에 대한 것은 그가 나름대로 이해한 부분들이다.
도마는 임마누엘에게 사울이 아주 악랄한 적이 되어 누구든지 그를 신봉하는 자에 대해서는 협박을 하고
다닌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이웃나라들에 있는 회당(synagogue)들에까지도 편지들을 보내어 임마누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의
적발을 요구했고, 자신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해 와서 재판에 넘겼던 것이다.
임마누엘은 자신이 사울을 손보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짰다.
그는 사울이 다마색으로 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길에서 그를 마주쳐서 잊을 수 없도록 한 수 가르쳐
주기로 계획했다.
사울은 그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할 것이었다.
임마누엘은 몇 가지 비밀스러운 것들 -화약, 연고, 그리고 액체들- 을 스스로 준비하여 시내를 떠나 길가에 숨어서
사울을 기다렸다.
밤이 되자 그는 사람들이 한 무리 길을 따라 오는 것을 보았고, 그 가운데에서 사울을 볼 수 있었다.
임마누엘은 자신이 특별히 준비한 것들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엄청나게 밝은 불빛과 소음들을 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으며 혼을 빼놓게 만들었다.
연기가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감싸게 되자, 임마누엘은 사울이 들을 수 있도록 고함을 쳤다.
임마누엘의 목소리를 듣자, 사울은 그가 유령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여 겁에 바싹 질리게 되었다.
임마누엘은 연기 속에서 말을 계속하여, 사울로 하여금 시내로 들어가거든 자신의 제자에게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도록 하였다.
그는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 다마스커스로 향했다.
사울과 다른 동료들은 자신들이 유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고 두려움에 질려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임마누엘이 무덤에서 나와 그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리고 혼돈에 빠진 채 그들은 다마스커스로 여행을 계속했다.
임마누엘의 제자 한 사람이 사울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 주었다.
그 바람에 그는 서서히 이해를 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겁에 질렸기 때문에 사울은 약간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별로 많이 알아듣지를 못했었다.
사울은 당시의 고위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즉 그는 환생(reincamation)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울이 임마누엘의 목소리를 듣고 빛을 보았을 때 임마누엘이 부활했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을 자신의 가르침들 속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임마누엘이 죽음에서 일어나서 부활했다고 하는 생각의 시발인 것이다.
사울은 임마누엘이 결코 죽은 적이 없으며, 단지 자신을 놀린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임마누엘과 동생인 도마, 유다 이스카리옷,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는 인도로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많은 나라들에서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연설의 내용이 너무 혁신적인 바람에
종종 박해를 피해 달아나야만 하기도 했었다.
인도로의 여행이 몇 년씩 걸렸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서파키스탄이라고 불리는, 한참 높이 올라가 서히말라야 산맥의 마지막 발꿈치 근처에 있는 나라에서
그의 모친은 병이 심해져서 죽게 되었다.
임마누엘의 나이가 38세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오늘날 마리(Mari)라고 불리고 있는 파키스탄의 작은 마을에 묻혔다.
모친을 잃은 뒤 임마누엘은 인도의 북부를 가로지르는 카시미르라고 알려진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더 깊이 전파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가 약 45세 정도 되었을 때,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여 여러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다른 모든 평범한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정착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인도의 슈리나가르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그 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가르침들을 전파했다.
약 115세의 나이로 그는 자연사(natural death) 했으며, 시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무덤에 묻혔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약 90세 정도에 죽어 슈리나가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묻혔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맏아들 요셉이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유다의 뒤를 이어 기록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간 다음에는 인도를 떠났다.
3년 동안의 여행 끝에 그는 예루살렘에 와서 정착했고 여생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가르침들을 적은 원본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들을 맨처음에 임마누엘이 들어가 있었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속에 감추었다.
그는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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